이창호-최철한-이세돌 “바둑 공한증 보라”

  • 입력 2008년 5월 8일 03시 00분


응씨배 바둑선수권 한국 기사 3명 4강에

■ 8강전까지 결산

중국 상하이에서 3일 끝난 제6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본선에서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 9단이 4강에 올랐다. 나머지 한 자리는 중국의 류싱 7단이 차지했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이 대회의 우승상금은 40만 달러(약 4억 원).

4강전은 이창호-이세돌, 최철한-류싱 7단의 대결로 9월 중 열린다.

국내 팬들로선 이창호 최철한 9단의 부활을, 세계 1인자인 이세돌 9단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반가운 결과였다. 이들은 이번 대회에서 각각의 기풍을 뚜렷이 드러내며 승리를 거뒀다. 그 전말을 살펴본다.

○이창호 9단-소리 없이 이긴다

지난해 54승 31패로 최악의 성적을 거뒀던 이 9단은 올해 20승 4패로 순항 중이다. 세계대회인 춘란배에선 한국 기사론 유일하게 8강에 올랐고 지난달엔 후지쓰배에서도 8강에 진출했다. 부활 조짐을 뚜렷이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응씨배를 맞았다.

그는 16강에서 중국 신예 셰허 7단을 가볍게 눌렀다. 그러나 8강전 조치훈 9단과의 대결은 가시밭길이었다. 초반 우변 패를 이겼지만 하변 중앙 좌변에 이르는 큰 집을 내줘 불리해졌다. 이 9단은 묵묵히 조 9단의 뒤를 따라갔지만 종반 무렵 ‘역전이 힘들다’는 판정을 받았다. 마지막 승부처는 우상 쪽. 이 9단은 허술한 듯 보이는 수를 던졌고 조 9단은 안심한 듯 별생각 없이 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이 9단의 허허실실 전법. 이 9단은 번개처럼 상대 돌 석 점을 잡으며 역전시켰다.

끈기를 갖고 상대를 따라가다가 정확한 수읽기로 소리 소문 없이 역전시키는 이 9단의 전매특허가 발휘된 한 판이었다.

○최철한 9단-독사의 맹독을 뿜다

‘독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최 9단은 4년 전 아픔을 갖고 있다. 당시 그는 이 대회 결승에 올라 중국의 창하오 9단과 만났다. 그는 결승전을 앞두고 국내 기전인 국수전에서 이창호 9단을 3 대 0으로 셧아웃시켰다. 바야흐로 ‘최철한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 더구나 상대가 이 9단에게 번번이 패했던 창 9단이었으니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그러나 결과는 1 대 3의 패배였고 최 9단은 이후 긴 슬럼프에 빠졌다.

최 9단은 16강전에서 중국 1인자 구리 9단을 만났다. 힘 바둑 위주의 두 기사는 초반부터 부딪쳤다. 치열한 힘겨루기 끝에 서로 대마의 생사를 건 싸움으로 번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독사가 맹독을 뿜듯 최 9단의 묘수가 터졌고 그걸로 바둑이 끝났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 있다. 독사의 이빨이 빗나갈 뻔했다는 것이다(이 한 수 참조). 8강전은 중국의 조선족 출신 기사 박문요 5단과의 대결이었다. 최 9단의 맹독을 슬슬 피하던 박 5단이 스스로 넘어져 최 9단의 낙승으로 끝났다.

○이세돌 9단-흔들기로 KO시키다

절망 절망…24강전 후야오위 8단, 8강전 쿵제 7단과의 대결에서 이 9단의 바둑은 ‘절망’이라는 단어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후 8단과의 대결에선 빈사 상태의 대마를 간신히 살렸으나 크게 불리했고 쿵 7단과의 바둑에선 대마가 대가 없이 죽어버렸다. 모두 이 9단의 패배를 점칠 무렵. 이 9단 특유의 흔들기가 시작됐다. 찌르고 긁고 버티고 반상을 종횡무진 누볐다. 지독한 이 9단의 수법에 후 8단과 쿵 7단은 ‘설마 이런 바둑을 역전당하랴’라는 낙관 속에서 조금씩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정없이 내려치는 이 9단의 몽둥이질에 우세는 미세로 변했고 마침내 역전에 이르렀다. 대국 당사자는 물론 이를 관전하던 기사와 바둑 팬들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대역전 드라마였다.

후 8단과의 대결이 끝난 뒤 인터넷 바둑사이트에는 이런 글이 올랐다.

“어제 숙직하고 오늘 낮에 퇴근해 바둑 TV와 인터넷 중계로 (이 9단의 바둑을) 봤다. 보다 눈물이 핑 돌 뻔했다. 나이 서른여섯에 바둑 중계 보다 울컥하다니. 나 이래도 돼?”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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