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현이 흐느끼면 밤은 사랑을 꿈꾸고…

  • 입력 2008년 5월 8일 03시 00분


‘세레나데 음반’ 들고 6년 만에 돌아온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 씨

자연스럽게 헝클어진 머리카락. 우수에 촉촉이 젖은 눈망울.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던 ‘샴푸’ CF로 인상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38) 씨. 그가 6년 만에 ‘세레나타 노투르노’(데카) 음반으로 다시 돌아왔다.

세레나타 노투르노는 ‘세레나데’(밤에 연인의 창가에서 부르는 사랑노래)와 ‘녹턴’(야상곡·夜想曲)의 이탈리아어. 둘 다 꿈꾸는 듯 낭만적인 밤의 음악이다. 19, 20일 오후 8시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리사이틀을 갖는 그의 공연 홍보 사진은 밤처럼 어둡지만 편안한 느낌을 준다.

김 씨는 14세에 주빈메타가 지휘하는 뉴욕필과의 협연으로 데뷔해 20세에 현악 연주자들에게 최고의 영예인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받았다. 그가 미국 백악관 초청음악회에서 “누가 이 단상을 치워줄 수 있을까요?”하고 부탁하자 당시 객석 앞줄에 앉아 있던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이 나와 직접 단상을 옮겼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대통령을 움직인 여자’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당찬 그가 왜 갑자기 사랑노래를 들고 나왔을까.

“아마 10년 전이라면 이 음반을 절대 녹음하지 못했을 거예요. 첫사랑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입니다. 사랑의 시련과 상처, 슬픔도 겪어봐야 진정한 기쁨을 알고 사랑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일까. 그의 음반에 실린 슈베르트, 구노의 ‘세레나데’나 푸치의 ‘기도’, 쇼팽과 차이콥스키의 ‘녹턴’에서 바이올린은 슬픔과 허전함으로 흐느끼고 보사노바풍으로 편곡된 토셀리의 ‘세레나데’에서는 사랑의 기쁨과 흥겨움이 애잔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그는 “재미교포 의사인 남편과 결혼해 9년간 정말 서로 사랑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연주여행으로 세계를 떠돌아 다녀야 하는 유목민의 숙명을 지녔고 남편은 정착된 생활을 원했다. 결국 2년 전 그는 결혼생활을 접었다.

“성북구 예닮교회에서 피카소 앙상블과 함께 사흘 밤낮을 꼬박 녹음작업을 하면서 밥도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요. 정말 많은 생각이 났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안타까운 감정들, 연주여행으로 남편과 떨어져 외로웠던 느낌…. 녹음 후 내 안에 쌓인 사랑의 추억을 모두 되새긴 것 같아 정말 시원한 느낌을 받았어요.”

인터뷰 도중 잠시 눈물을 보인 김 씨는 “이 음반을 녹음하고 사랑에 대한 더욱 깊은 확신과 용기를 얻었다”며 “음악가도 연주를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함께 미국순회 공연을 하고 폴란드 작곡가 펜데레츠키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미국 초연하는 등 고전음악뿐 아니라 현대음악, 실내악 분야에서도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2년에는 첫 크로스오버 앨범 ‘김지연의 프러포즈’를 발매해 국내에서 3만 장이 넘게 팔리기도 했다.

“프러포즈 음반을 통해 바이올린 소리를 처음 접했다는 팬이 많았어요. 이번엔 좀 더 정통 클래시컬한 레퍼토리로 꾸몄습니다. 친숙한 곡이지만 엘리베이터 배경음악처럼 결코 쉽게 흘려듣는 음악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김 씨는 LG아트센터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김태형(2008 서울국제음악콩쿠르 3위 입상) 씨와 함께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할 예정이다. 김 씨는 “이 곡은 작곡가 프랑크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이자이에게 결혼 축하 선물로 준 작품”이라며 “1악장은 사랑의 설렘, 2악장은 열정, 3악장은 슬픔, 4악장은 사랑의 기쁨이 담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말했다. 3만∼7만 원. 1577-5266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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