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보고 배우 천직 삼았죠” 아들 김수현씨
‘아버지와 아들’이 연극제에서 만났다.
배우 김인태(73) 씨와 아들 김수현 (35) 씨. 김인태 씨는 ‘주인공(13∼16일·02-762-3387)’에, 수현 씨는 ‘쿠크 박사의 정원(16∼20일·02-765-5476)’에 출연한다. 두 작품 모두 서울연극제 출품작인 데다 극장도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으로 동일하다.
공교롭게도 ‘쿠크 박사의 정원’은 1979년 초연 때 김인태 씨가 주인공 쿠크 박사 역으로 열연했던 작품이다. 수현 씨가 맡은 역은 짐 테니슨 박사. 자신의 뜻대로 마을을 개조하려는 쿠크 박사의 계획을 알아채고 논쟁을 벌이며 극을 이끌어가는 역이다.
“사회를 개조하는 독재자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한 작품이에요. 당시 유신 정부의 간섭이 심했죠. 어렵게 올렸는데 사람들이 후련했던지 계속 매진이 돼서 20일 공연을 40일로 연장했었죠.” (아버지)
“지금은 사회 비판의식보다는 드라마를 중요하게 다뤄요. 스릴러물이니까 얼마나 치밀한지가 관객들에게 중요하거든요.”(아들)
“허허,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가.”(아버지)
부자이면서 배우로서 선후배 사이인 이들의 대화에는 한국 연극계의 시대적 변화가 절로 배어나왔다.
“공연 시간을 보니 내가 할 때는 2시간 20분인데 이번엔 1시간 40분이네.”(아버지)
“이름이 길어서 이름 나오는 부분을 많이 줄였어요. 요즘 관객들은 전개가 빨라야 좋아하거든요.”(아들)
배우로서 아들의 연기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팽팽한’ 대화를 나누던 아버지는 “수십 년 된 나도 아직 배울 게 많다. 열심히 하며 기본을 지키는데 내가 더 할 말이 없다”고 ‘후배’ 배우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배우를 천직처럼 생각했다”며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서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인태 씨가 출연하는 ‘주인공’은 인생의 황혼기에 제2의 인생을 계획하는 두 노인의 이야기를 다뤘다. 김인태 씨는 미국 이민을 계획하는 박명진 역을 맡았다. 위암 투병 후 4년 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온 원로배우 오현경(73) 씨가 친구인 최팔영 역으로 출연한다.
김인태 씨는 “10년 가까이 TV 드라마에만 출연하다 보니 연극 무대가 그리웠고 마침 같은 무대에 거의 안 서봤던 오현경 씨가 출연한다니 더욱 욕심이 났다”는 그는 “연극배우를 하며 석 달 이상 연습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로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작용한다”며 웃었다. 김인태 씨와 오 씨는 모두 1970년대에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던 스타 연극배우다.
점심 식사를 뒤로 하고 ‘팽팽한’ 대화를 나누던 김인태 씨는 연습하러 간다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초연 때 그 역을 서인석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맡았어. 쿠크 박사와의 긴장 관계가 극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역이니 긴장과 자부심을 갖고 해야 할 거야.”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