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로 읽는 연극] “넌 흙만 파먹고 살래? 벌레만도 못한 인간아”

  • 입력 2008년 5월 9일 08시 27분


《“흙 파먹고 살래? 벌레만도 못한…”

일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조롱은 대상을 사람이 아닌 다른 것에 대입한다

대표적인 게 벌레다

일하지 않고 먹기만 하면 ‘식충이’가 되고 집 안에 콕 들어박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바퀴벌레’가 된다

여기 진짜로 벌레가 된 사람이 있다

바로 ‘그레고르 잠자’! 익히 이름만으로도 익숙한 카프카 ‘변신’(1912)의 주인공이다

아이슬란드 베스투르포트 극단의 기슬리 외른 가다슨(35)이 연출한 ‘변신’은 원작을 그대로 살려 벌레가 된 인간의 고통을 표현한다》

묵묵히 일만 하며 살아왔지만, 벌레로 변한 순간 가족은 충격에 휩싸여 그를 학대한다.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던 그레고르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과정을 연극은 충실히 보여준다.

카프카의 소설이 완성되던 20세기 초반이나 지금이나 ‘일’은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일 때문에…’라는 이유로 정서적인 관계 맺기에 소홀해진다. 일을 하는 사람이나 하지 않는 사람이나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노동에서 벗어나길 원해도 사람들의 하루 일과는 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탈락하면 원하지 않던 멸시를 받게 되고, 자학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다.

‘변신’은 노동을 이유로 남과 자신에게 압박을 가하는 현대인의 삶, 그 과정에서 자아를 잃어버리는 인간을 불우한 벌레로 변신시켜 보여준다. 주인공이 일을 못 하자 바로 테이블에서 그의 의자를 방구석에 처박아 버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바로 ‘변신’이 보여주는 일에 대한 강박이다.

아빠: 그레고르의 상태(벌레)는 대체 수입원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을 안겨주고 있어. 대안이 발견될 때까지는 이 작은 수입원이 우리를 지탱해줄 거요.

엄마: 하지만 사는데 충분하지 않잖아요?

아빠: 그 때문에 우리는 일을 해야만 하오.

그레테(주인공 여동생): 일이요?

아버지: 그래, 일! 노동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니…

그레테: 저는 저것, 저 생물체(벌레로 변해버린 오빠)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차마 입 밖에 내지 않겠어요. 그러니 제가 말하려는 것은 이거예요. 우린 저걸 없애버려야 해요. 우린 저걸 살피고 돌보는데 지쳤다고요.

-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에 대한 가족의 반응 中 -

벌레로 변한 주인공이 천장에 매달려 이동하고 생활하는 모습은 기이하고 고통스럽게 표현된다. 주인공의 방은 아슬아슬하게 90도가 비틀어져 관객들은 바닥에 수직으로 설치된 침대를 보게 된다. 실직 상태에 놓이자, 곧장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불안한 그레고르의 모습을 공연 세트조차 여실히 드러낸다.

연출가이자 주인공인 ‘기슬리 외른 가다슨’은 최근 공연된 ‘러브’ 뮤지컬의 원작자이자, 영화배우 주드 로와 흡사한 잘 생긴 외모로 국내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극 중에 공중제비나 회전 등 신체 언어극을 선보이는 이색적인 연출가다. 주인공이 죽은 뒤 가족들이 태연하게 소풍을 갈 때, 방 안에 홀로 버려져 천장에 매달린 모습이 처절하기 그지없다. 아이슬란드에서 사랑받는 연극인으로 ‘변신’ 외에도 24일, 25일 ‘보이첵’(의정부 예술의 전당 대극장)으로 국내 관객을 찾는다.

카프카의 ‘변신’은 청소년기의 필독서다. 청소년기는 일에 소외되지 않은 채 진정한 진로를 찾아야 하는 시기이다. 학생들이 어렵다고 투덜대던 원작과 더불어, 무대 위에서 실제로 펼쳐지는 변신을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Clip!

공연일시:5월 16일∼18일

공연장소: LG아트센터

관람료:6만원, 5만원, 3만원

공연관람가:12세 이상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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