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白壽)논문집은 이 몸이 100세를 산 기쁨을 느끼게 합니다. 그간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에 묻혀 100세를 살아왔습니다.”
국악계 원로 만당(晩堂) 이혜구(사진) 옹의 100세를 축하하는 모임이 9일 오후 5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렸다. 휠체어에 탄 채 무대에 오른 이 옹은 자신의 백수를 축하하는 국악인들에게 “먼저 간 동지와 후학들의 명복을 기원한다”며 인사를 전했다.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옹은 경성제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경성방송국에서 국악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전통음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54년에는 한국국악학회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서울대 음대 학장을 지냈다. 이 옹은 1990년대 중반까지 서울대, 한양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서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이날 모임에서 후학들은 이 옹에게 ‘만당 이혜구 박사 백수 송축논문집’(민속원)을 봉정했다. 1060쪽에 이르는 이 논문집에는 한국과 미국, 일본, 영국, 베트남 등지에서 연구하고 있는 30∼80대 후학들의 논문 45편이 실렸다.
서예가 원중식 씨는 논문집 제호를, 이수덕 씨는 기념휘호를 각각 썼고, 화가 오승우 씨는 십장생도,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장은 송축시, 예술원 회원인 김종길 씨는 송축사, 작곡가 강석희 씨는 작품 ‘Myth’를 각각 헌정했다. 또한 서울대 국악과 제자들이 궁중 정재(呈才)인 ‘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을 연주했다.
현재 ‘한국국악사’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이 옹은 “내 생전에 환갑(還甲)논문집, 구순(九旬)논문집, 백수논문집 등 3권을 봉정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라며 “해를 거듭할수록 논문집에 실린 논문의 편수가 늘어나는데 이것은 한국음악활동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기쁜 현상”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