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교수는 연구 끝에 다른 소득도 얻었다. ‘처용’이 갖는 문화 콘텐츠로서의 힘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한국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할 정도.
그가 처용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 책으로 냈다. 처용의 아랍 도래설에 대한 분석, 문화 콘텐츠로서 ‘처용 문화’의 활용 방안 등을 고찰한 ‘처용가와 현대의 문화산업’(글누림).
허 교수는 “처용이 페르시아 문명을 근거로 하는 아랍 상인이라는 학설은 여러모로 설득력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처용가’의 내용 자체에서 그 근거를 찾았다.
‘서울 밝은 달밤에/밤늦도록 놀고 다니다가/들어와 자리를 보니/다리가 넷이로구나/둘은 내 것이지만/둘은 누구의 것인고/본디 내 것이다만/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당시 향가가 호국과 찬불(讚佛)적인 내용 위주였음을 감안할 때 ‘간통’을 주제로 에로티시즘을 다룬 처용가는 대단히 예외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에 허 교수는 주목했다. 그는 “삼각관계, 왕비의 간통 등을 도입부로 삼은 페르시아의 ‘천일야화’와 구성이 비슷하고 성적(性的) 자유를 다룬 당시 아랍권 문학의 감수성과 닮았다”고 설명했다. 또 7, 8세기 페르시아 일대의 문학작품에 폭넓게 퍼져 있던 ‘연인 뺏기’ 모티브와도 맥락이 닿는다는 것.
처용가가 지어진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 사람과 문물이 신라에 상당수 들어왔다는 역사적 사실도 처용의 아랍 도래설에 힘을 실어준다고 허 교수는 덧붙였다. 또 ‘고려사’에 기록된 처용의 용모에 대한 묘사는 아랍인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한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처용은 지방 호족의 자제이며 처용가는 지방 호족이 중앙 귀족에게 느꼈던 갈등의 표현이라는 해석을 포함해 다른 해석도 많다”면서도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지만 당대 아랍과의 교역 사실, 술과 가무를 즐기는 행적, 기록에 묘사된 그로테스크한 형모 등 모든 척도를 따질 때 아랍 상인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처용이라는 인물이 갖는 신비, 처용가의 이색적인 작품 분위기 덕분에 처용가는 명맥을 유지하며 후대에 계속 다른 작품으로 재생산됐다는 게 허 교수의 분석이다.
그러나 허 교수는 “그동안 뮤지컬, 오페라, 소설, 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처용가와 처용을 활용해왔지만 처용을 우리의 문화유산으로서 종합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처용에 관한 자료를 별도로 모은 데이터베이스(DB)가 없어 이번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개별 자료를 일일이 찾아야 했다는 것.
그는 “처용 문화처럼 우리 문화의 독특성과 세계문화의 보편성을 공유한 문화 콘텐츠는 매우 드물다”면서 “영화 드라마 공연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 게임 같은 디지털 문화의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므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마지막으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8월 31일까지·02-793-2080·월요일 휴관)가 처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처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우선적으로 중동 페르시아와 연계해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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