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 26개 섹션이 열리는 국제출판회의(IPA) 서울총회 이틀째인 13일. 이날은 ‘새로운 도전’이라는 주제로 ‘아시아에서의 출판의 자유’ ‘중국 출판의 오늘’ ‘아시아 출판의 과제와 미래’ 등 다양한 아시아 관련 회의가 열렸다.
이와 관련해 같은 날 오후 IPA 총회장에서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 소속 한중일 출판 관계자 3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2005년 세 국가를 포함해 대만과 홍콩 등 아시아 출판인들이 공동 출판과 독서운동을 위해 만든 모임이다.
이날 자리에는 지난달 이 모임의 2대 대표를 맡은 김 대표와 둥슈위(董秀玉) 베이징 싼롄서점 대표, 이전 대표였던 가토 게이지(加藤敬事) 전 미스즈서방 사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상업적 대중문화의 범람에 맞서 출판을 포함한 종이매체들이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화 교류의 핵심은 학술과 인문
▽가토 사장=현재 동아시아 출판의 학술이나 인문 시장은 서구적 시각의 책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는 데 동아시아 출판인들이 뜻을 같이한 것이다.
▽둥 대표=무엇보다 최근 동아시아 문화 교류가 대중문화 쪽에 치우쳐져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는 진정한 문화 교류가 아니다. 깊이 있는 교류를 위해서 책, 즉 출판이 나서야 했다.
▽김 대표=동아시아는 서로 이웃나라지만 이해는 부족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종이매체에 종사하는 동아시아 문화인으로서 무엇을 할지 함께 논의하게 된 것이 이 모임의 성과다. 동아시아 저자를 키우고 연구해 우리의 문화와 정신 사상을 꽃피울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둥 대표=맞는 말이다. 정부가 밀어준 것도 아니고 출판인들이 의기투합해 모였지만 목표는 분명해졌다. 상업적 대중문화와 인터넷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좀 더 진지한 공통 문화 콘텐츠를 찾으려 한다. 출판은 물론 언론과 교육 분야가 함께 나서야 할 일이다.
▽가토 사장=현재 동아시아 문화 교류에는 핵심이 빠져 있다. 바로 학술과 인문적인 교류 부분이 약하다. 단순히 각 국가의 책을 번역해 수입하고 수출하는 문제가 아니다. 함께 고유문화를 지키기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김 대표=가능성은 충분하다. 현재 동아시아는 어느 때보다 서로에 대한 정치 경제 문화적 관심이 높다. 이를 근거로 더 건강한 교류를 위해 출판이 나설 적기라고 본다.
○동아시아의 문화 르네상스를 위하여
▽가토 사장=그런 뜻에서 먼저 동아시아 문화 발전이라는 비전을 가진 출판인을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 간의 교류와 번역, 저작권 등에 대한 새로운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동아시아출판인회의 이름으로 동아시아 독자에게 권하는 100권의 책을 선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김 대표=좋은 의견이다. 동아시아는 사실 서구보다 훨씬 오랜 역사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풍토를 만드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일이다. 출판인뿐만 아니라 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채널도 만들어야 한다.
▽둥 대표=한마디로 ‘동아시아의 문화 르네상스’를 추구해야 한다. 동아시아는 이제 어느 정도 경제적인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아직 학술과 출판문화의 자립도는 그에 못 미치고 있다. 출판 신문 등 종이매체는 이런 지식을 조직화해내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김 대표=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IPA 자체도 서구적인 체계 아닌가. 이를 부정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간 부족했던 부분을 동아시아 출판인들이 채울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총회를 통해 동아시아의 가치나 전통도 알릴 수 있는 토대를 닦았으면 한다.
▽가토 사장=모두 힘을 합쳐 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둥 대표=전통문화에 대한 바람은 최근 중국에서도 눈에 띄게 드러난다. 이른바 ‘국학열’로 이름 붙여진 전통 인문학과 철학에 대한 관심이다. 이를 중국 내에서 해소할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들과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본다.
▽김 대표=책 교류의 장점은 여타 정치 경제 교류와 달리 어떤 갈등이나 문제점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데 있다. 학문과 문화를 기반으로 한 상호 협력은 현재 각국이 처한 문화 위기도 극복할 원동력이 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서로 도움을 아끼지 말자.
▽가토 사장, 둥 대표=물론이다. 10월 동아시아출판인회의 서울대회가 기다려진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