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아빠'로 사는 게 요즘 같이 피곤할 때가 또 있을까.
평생직장은 이미 전설이 됐다. 조직폭력배의 '직업' 만족도가 경찰이나 일반 직장인의 그것을 넘어섰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직장 분위기마저 살벌해진지 오래.
운동과 식이요법, 영양제 복용을 병행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전투력'을 높이고 가족의 웰빙을 책임지기 위함인데, 아내는 "집안 일 안 도와준다", "퇴근시간이 늦다"고 불평.
안팎으로 받는 스트레스에 어쩌다 술 한 잔, 담배 한 모금 빨면 바로 '알코올 중독' '니코틴 중독자'로 찍히고, 토요일에 잠시 누워 자면 '가정을 소홀히 한다'며 일요일 내내 밥상에 반찬 자유낙하하기 십상.
그러나 이 험난한 세상에서도 단 한 가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녀교육' 이다.
'나와 같은 삶을 물려주기 싫어서'이건, '남들이 다 하니까 그들보다 더 잘하고 싶어서' 이건, '훌륭한 아빠로 기억되고 싶어서'이건, '마누라가 강요하니까'이건, 이유야 얼마든지 다양하고 거창할 수 있지만 '자녀교육'을 위한 에너지를 남겨놔야 한다는 것은 이제 의무가 됐다.
하지만 어떻게? 태어날 때부터 동심을 잃은 것 같고, 실적 채우느라 어렸을 적 하던 놀이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이런 가장들을 위한 서적들이 잇따라 출판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권오진 씨는 이른바 '직업 아빠'다. '좋은 아빠 되기'를 주제로 각종 방송과 강연의 단골 출연자인 그는 인터넷을 통해 아빠, 자녀가 함께하는 '무인도 탈출하기' 등 반나절~2박 3일짜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책에서 동심과 어릴 적 놀이에 대한 추억은 잊지 않은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빠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 1700가지를 생활 주변에서 긁어 담았다.
거창한 이벤트도 없고, 차타고 멀리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빠 입장에서는 따분하기 짝이 없을 가능성마저 높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하는 이들 1700개 놀이를 "넋을 잃고 즐길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
'입으로 부는 탁구공 축구'는 탁자나 바닥에서 아빠와 자녀가 마주보고 입으로 탁구공을 불어서 서로 상대방의 골대에 골인을 시키는 놀이다.
이 밖에 '설거지 하는 엄마 옆에서 그릇 종류 알아맞히기', '축구공 높이 차기', '두루마리 화장지로 온몸 감기', '민들레 불어서 날리기', '제기차기', '한발로 목적지 갔다 오기', '페트병 난타', '줄로 아빠 끌기', '아빠 발에 매달려 끌려 다니기(질질이 놀이)', '못 쓰는 옷에 물감으로 그림 그리기', '수건 쌓기'….
혹시 자녀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부모라면, 아이들이 이 같은 '하찮은' 놀이에 얼마나 열광하는 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아빠에게 동심이 남아 있다면, 주위 사물 모든 게 장난감으로 보인다면 이 책은 필요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빠들에게 이 책은 자녀와 '코드'를 맞추는 데 필요한 지침을 담은 '매뉴얼' 역할로 손색이 없을 정도.
얼핏 단순한 놀이, 시간 때우기 같지만 저자는 이 같은 단순한 놀이들을 통해 △균형감각 △도전정신 △만물의 소중함 △사회성 △신체기능 △의사소통 능력 등을 향상 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얘들아~ 아빠랑 놀자'(한울림) 역시 아빠와 자녀가 놀이를 함께 하며 교감하는 법이 주 내용이다.
저자 서진석씨는 가족신문 '사랑으로 띄우는 종이비행기' 발행인으로 그 역시 '직업 아빠' 계열이다.
'바둑알 놀이', '주사위 놀이', '컴퓨터 함께 갖고 놀기' 등 각종 게임부터 '보물찾기' '○○
○꽃이 피었습니다' 등 '아빠 어렸을 적 놀이' 까지 다양한 놀이를 담았다.
놀이교육 전문가 천신애씨가 쓴 '아빠랑 아이랑 친구되는 행복한 놀이'(행복한나무)도 잠들었던 아빠의 동심을 깨워 자녀와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도록 도와주는 책으로 추천할 만 하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