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잘라라, 세상을 향한 욕망의 뿔

  • 입력 2008년 5월 15일 02시 59분


《과연 춤의 철학자다.

홍승엽(46) 씨.

두툼한 안무 노트 세 권을 보여주면서 “‘뿔’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라고 알려줬다.

노트를 쓰기 시작한 날은 2006년 12월. 1년 반에 걸친 생각의 숙성 끝에 나온 작업이다.》

2년 만에 신작 ‘뿔’ 공연

안무가 홍승엽 씨

안무가 홍 씨가 이끄는 ‘댄스씨어터온’이 30일 오후 8시, 31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신작 ‘뿔’을 선보인다. 2006년 공연 ‘아큐’ 이후 2년 만의 신작.

다른 장르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순수한 창작무용으론 4년 만이다(그는 소설 ‘아큐정전’을 바탕으로 ‘아큐’를, 희곡 ‘에쿠우스’를 토대로 ‘말들의 눈에는 피가…’를 공연했다). 창작무용에서 그의 재기가 더욱 빛난다는 평을 듣는 만큼 ‘뿔’에 대한 공연계 안팎의 기대가 크다.

13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연습실. 홍 씨는 단원들과 함께 연습에 한창이었다. 12명의 단원이 군무를 추는 장면이었다. 손을 하늘로 몇 번씩 내뻗었다가 내리면서 몸을 안쪽으로 둥글게 구부리는 무용수들. 뿔을 상징하는 손이 크게 움직일 때의 격렬하고 불안한 몸짓과 고개를 숙이고 몸을 말 때의 평온한 분위기가 대비된다. 그가 안무노트에 적은 ‘뿔을 잘라내고 기억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무용은 보고 느끼는 장르죠”

‘뿔’은 과연 무엇일까.

“포스터엔 영어로 ‘horn’이라고 썼습니다만, 안테나나 센서에 가깝습니다. 정보가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더 많이 진화하겠다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해 왔거든요. 나만의 개성을 갖겠다며 현대인은 온갖 정보를 빨아들이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모두 똑같지요.”

결국 자기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선 바깥으로 향한 뿔을 자르고 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홍 씨는 일러준다.

무용수들의 몸짓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해달라고 하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용은 문학이나 드라마와는 감상 방법이 달라서…. 관객에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보고 느끼는 장르지요. 그런 점에서 클래식 음악에 가깝다고 할까요.”

안무를 시작했을 땐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에 몰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공연이 관객의 것임을 깨달았다는 그. 그래서 “보고 느껴달라”고 당부한다.

경희대 섬유공학과 재학 중 무용에 입문했고, 무용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1984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은 이력은 유명하다.

학연과 인맥으로 묶인 무용계에서 그는 ‘독립군’으로 불린다. 1993년 댄스씨어터온을 창단했을 때 다들 얼마 못 간다고 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탄탄한 관객층이 생겼다. 2000년 프랑스 리옹 댄스 비엔날레에서 댄스씨어터온의 공연 ‘데자뷔’와 ‘달 보는 개’는 5회 연속 매진을 기록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무용단이 됐다. 6월 아시아의 대표적인 공연예술 축제 중 하나인 ‘싱가포르 공연예술 페스티벌’에 초청돼 ‘아큐’를 선보일 참이다.

○“무용시장 키우는 게 꿈”

척박한 풍토에서 분투하면서 성과를 얻어낸 만큼 무용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우리나라엔 무용 시장이 없습니다. 입시와 콩쿠르 시장만 있을 뿐이에요. 예술은 없는데 무용학교는 만들어지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단원들은 한 달에 30만∼40만 원을 받고 일해요. 오후 6시 연습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저는 해외 활동에 힘을 쏟습니다.”

순수하게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더 많은 관객을 모으고, 무용 시장을 키우는 것. 그게 ‘독립군’ 홍승엽 씨가 품고 있는 꿈이다. 2만∼4만 원. 02-2005-0114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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