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번 어른이 돼봤던 둘째 수잔(애너 포플웰)은 만사가 허무하다. 흘깃흘깃 수줍은 눈빛으로 접근해 오는 사춘기 동급생은 그저 귀찮을 따름.
절대자의 검을 지닌 위대한 왕이었던 맏이 피터(윌리엄 모즐리)는 길거리 싸움을 일삼는 왈패가 됐다. “왜 사람을 때렸느냐”고 물어보니 “지나가다 어깨를 건드려 놓고 사과를 해서”란다. “사과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꾸준히 삶을 비관했더니 낙원으로부터 때맞춰 호출이 온다. 참 편리하다. 게임 스타트.
홍안의 소년에서 턱수염 더부룩한 장정으로 자랄 때까지 머물렀던 동네였으니 다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놔두고 떠났던 아이템을 챙긴 다음 미션 재개. 데모 스테이지는 생략한 채 바로 고난도 액션으로 들어간다.
감독 앤드루 애덤슨은 1편에서 전투 신이 한 번뿐이었던 게 많이 아쉬웠나 보다. 2편의 인물들은 시종일관 베고 찌르고 부순다. 칼로 목을 뎅겅 잘라내고, 어깻죽지를 도끼로 내리친다. 판타지 세상 나니아이기 때문인지 피는 안 보인다. 뼈가 부러지고 살점 찢기는 소리가 선연해도 피가 없으니 ‘전체 관람가’로 괜찮은 것인지.
주제는 단순하다. ‘싸워서 이겨라. 강한 자가 군림한다. 앞길을 가로막는 적은 힘으로 철저히 굴복시킨 뒤 용서를 베풀어라….’
나니아의 전쟁터에 나선 인물들은 바둑돌을 연상시킨다. 회색이 없다. 선 아니면 악. 1편에서 담백하게 그려낸 가족애와 희생, 우정의 뭉클함은 사라졌다. 다시 아이의 몸을 갖게 된 어른들의 모험담답다.
빛나는 매력을 선보였던 아역 배우들의 변화도 아쉽다. 피터는 아드레날린 과잉의 아둔한 마초로 전락했다. 1편에서 전쟁이라는 미명 아래 숱한 생명을 도륙한 벌로 사회 부적응자가 돼버린 듯하다.
막내 루시(조지 헨리)의 여전한 사랑스러움이 그나마 큰 위안이다. 1편에서 모든 이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셋째 에드먼드(스캔다 케인스)가 조금 똑똑해져서 퇴보해 버린 형 피터를 열심히 돕는다.
수잔은 여전히 매력 부족. 존재감 없는 ‘주인공’ 캐스피언 왕자(벤 반스)와의 라스트신 작별인사는 영화에서 본 가장 미적지근한 키스 가운데 하나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