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나가듯 듣는 얘기가 있다. “첫째는 얌전한데 둘째는 사고뭉치야.” 뭐, 그러려니 하고 넘기던 이 말. 여기에 ‘과학’이 숨어 있다.
내용은 간단하다. 진화론을 바탕으로 살펴볼 때 첫째보다 둘째 이후의 자녀―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후순위 출생자’―가 훨씬 개혁적이고 체제 반항적이란 소리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운명론이냐고 되묻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런데 저자의 설득력이 만만치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인성과 사회 조사연구소’ 초빙교수인 저자는 그간 세계를 놀라게 했던 혁명과 혁신을 다시금 살핀다. 종교개혁, 프랑스혁명, 공산혁명 등 121개의 역사적 사건과 진화론, 코페르니쿠스 혁명, 상대성이론 등 28가지 과학 혁신. 그리고 여기에 개입된 6566명의 전기적 자료를 분석한다. 그 결과가 후순위 출생자들의 반항 기질이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예로 들어 보자. 당시는 거의 모든 과학자가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종의 기원 출간 이전 진화론에 관해 언급한 후순위 출생자 117명을 보면 48%가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반대로 103명의 첫째 가운데 9명만이 진화에 공감한다.
출간 이후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후순위 출생자들의 진화지지 비율은 첫째보다 9.7배나 높아진다. 과학자 형제 조르주와 프레데리크 퀴비에는 극단적인 사례다. 형은 진화론을 열정적으로 배격한 반면 동생 프레데리크는 조심스럽지만 우호적 태도를 보였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후순위 출생자들의 지지확률이 첫째보다 5.4배 높다. 급진 이데올로기 혁명의 이단적 대안을 지지할 확률은 평균 4.8배가량 높았다. 다만 기술 분야의 혁명은 2.2배로 비교적 작은 격차를 보였다.
“후순위 출생자들은 기성의 사회 질서를 지지하는 첫째 출신의 형제들과 달리 일관되게 자유주의적 개혁을 지지했다. 서구 역사에서 후순위 출생자들이 급진적 정치혁명을 옹호할 확률은 첫째들보다 18배 더 높았다. 신교도 종교 개혁기에 후순위 출생자들은 첫째들보다 개혁 활동에 나섰다가 순교할 확률이 48배 더 높았다.”
과연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날까. 이 책에 따르면 이는 인간의 진화에서 ‘가족’이란 독특한 환경구조로 빚어진 결과물이다. 심리학자들은 한때 가족은 가정환경을 ‘공유’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저자에게 가정은 “다양한 위치와 특권 나이 체격 힘 등이 포진한 구조”다. 상이한 개인이 각각의 지위를 차지하며, 그 지위는 삶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때문에 형제 가운데 으뜸가는 지위의 첫째는 가족 생존을 중시하는 부모의 관점을 수용하고 그들의 이해관계와 ‘제휴’한다. 이 때문에 어린 동생들의 잠식에 맞서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적 시각을 갖는 경향이 크다. 반대로 후순위로 태어난 자식들은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첫째에 맞서며 다른 활로를 찾는다.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성향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저자가 볼 때 이는 다윈이 직접 언급하진 않았어도 그의 진화론과 딱 들어맞는 결론이다. 다윈 진화론의 핵심은 각 환경에서 개인차를 인정하는 ‘개체군적 사고(population thinking)’를 바탕으로 한다. 형제마저 환경 등을 이유로 진화적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어떤 실재가 일정하게 확립된 범주에 속한다고 간주하는 창조론의 ‘유형학적 사고(typological thinking)’의 한계를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결과는 가족을 바라보는 기존의 2가지 철학에도 상처를 준다. 마르크스는 가족구조에서 역사변환의 엔진을 찾았으나 형제간 편차가 존재함으로 인해 힘을 잃었다. 프로이트는 가족생활에 존재하는 대인갈등의 중요성을 인식하긴 했으나 성적 충동과 오이디푸스 갈등에 초점을 맞춰 형제들의 경쟁과 조건적 타협을 놓쳤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타고난 반항아’는 재밌으면서 불편하다. “가족은 행복의 요람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또 다른 밀림”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일견 수긍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 역사가 수천 년을 이어온 진화의 산물이 담겨 있다.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이 과학적 메커니즘이 ‘진화심리학’이란 이름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눈감고 모른 척하기엔 그 매력이 너무나 광대하다.
하나 더, 이 책은 ‘서론의 오해’가 크다. 보통 인문서나 과학서는 서론만 보곤 별로 어렵지 않겠거니 덤볐다가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다. 허나 이 책은 서론이 더 헷갈린다. 본편으로 들어가면 그리 힘들지 않다. 그만큼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설명한다. 책을 쓰는 데 26년 걸렸다는 노(老)과학자의 저력을 느껴 보길. 원제 ‘Born to rebel’.(1996)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후순위 출생자’의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이 책이 근간으로 삼은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여섯 형제 중 다섯째였다. 미국 인종평등을 위해 싸웠던 마틴 루서 킹 목사도 세 형제 중 둘째였다. 폴란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와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둘 다 세 형제 중 막내였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무려 열일곱 형제자매 중 열다섯 번째였다.
첫째라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소아마비 백신을 발명한 조너스 솔크나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는 첫째다. 체 게바라와 마오쩌둥도 큰아들이다. 과학적으로 우세하다 해도 예외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