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사찰을 돌며 만나는 고승의 자취…‘절집기행’

  • 입력 2008년 5월 17일 02시 58분


◇절집기행/심석구/336쪽·1만2000원·스테디북

전국의 사찰을 찾은 뒤 쓴 에세이지만 사찰 대웅전의 웅장함, 석탑의 고색, 단청의 빛깔에 대한 감상은 없다. 소설가인 저자는 사찰에서 고승들의 삶을 본다.

사찰에 얽힌 고승들의 이야기를 더듬은 후 사찰로 가는 길, 사찰의 풍경, 사찰과 그 주변에서 만난 평범하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낸다.

527년 이차돈이 순교를 자청했다. 이차돈의 목을 베자 젖빛의 피가 솟구쳤고 잘린 목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가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다. 자추사(刺楸寺)다. 이곳이 훗날 백률사가 됐다. 저자는 경북 경주시 백률사를 찾아가는 길에서 이차돈을 회상한다.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를 자청한 젊은 이차돈의 굳은 심지를 되돌아본다. 불국정토(佛國淨土) 신라 불교의 초석을 쌓은 이차돈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물음의 답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보여줬다고 말한다.

661년 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다가 어느 바위굴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목이 마른 원효가 손에 잡히는 바가지의 물을 달게 마시고 잠들었다, 다음 날 보니 그 물이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었다. 잘 알려진 이야기다. 저자는 이곳이 막연히 북한의 어느 산골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바로 그 자리에 사찰이 세워졌고 경기 평택시에 현존한다는 사실을 알고 무작정 길을 떠난다. 852년 창건된 수도사다.

수도사에서 저자는 해골 썩은 물에서 깨달음을 얻은 원효가 당나라로 떠나는 의상을 배웅하고 신라로 돌아와 승복을 벗은 뒤 그 무엇도 걸릴 게 없다는 무애(無碍)의 길을 떠나기까지 속내를 잔잔한 목소리로 전한다.

전남 순천시 선암사에서는 대각국사 의천을, 순천시 송광사에서는 보조국사 지눌을, 충북 보은군 법주사에서는 불교 선종의 중흥조(사찰을 중흥해 높은 공을 세운 승려를 일컫는 말)의 흔적과 사상을 더듬는다. 이렇게 돌아본 사찰이 전국 11곳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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