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장에서 헬스클럽 트레이너를 소개받았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를까. 셔츠 밑에 근육질 몸매가 감춰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여자’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 중에는 ‘운전을 못한다’ ‘계산에 서투르다’ 같은 게 포함된다.
‘흑인’이라고 하면 게토에서 몰려다니며 농구나 할 거라고, 하지만 노래와 춤 솜씨는 뛰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노숙인’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며, 사업에 실패해 술이나 퍼마시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이 모든 건 편견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사회의 집단의식, 또는 개인의 경험이 낳는 편견을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일상생활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말수가 적은 여자가 좋다’라고 말한다면 이것 역시 무의식중에 편견을 드러내는 말이다. ‘여자는 원래 말이 많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얌전한 애들이 좋아’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런 종류의 편견을 ‘특정 조건과 결합된 편견’으로 정의했다.
‘여자는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 ‘하층민들은 사교성이 좋다’ ‘게이들은 창의적이다’ 등의 생각은 어떨까. 앞에 든 예보다는 긍정적인 내용들이다. 저자는 이 역시 편견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많은 학자는 이처럼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생각은 편견이라기보다 고정관념으로 부른다. 편견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저자 역시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독일인=나치’라는 식의 발언을 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편견을 지적하면서 “지도층 인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 법”이라며 스스로의 편견을 드러낸다. 저자는 또 어느 날 강의를 하던 도중 심부름을 시킬 일이 생기자 흑인 여학생을 지목했다. ‘흑인은 빠르다’는 고정관념이 무의식중에 나타난 사례다.
저자는 편견이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라며 1960년대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의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어느 학교에서 실험자가 교사들에게 “마기와 막스는 똑똑하고, 에르곤과 마르타는 머리가 나쁘다”고 귀띔을 해준 뒤 이 말이 낳는 결과를 지켜본 것이다. 사실은 마르타가 마기보다 머리가 좋고 성적도 뛰어났다.
1년 후 성적을 확인해 보니 마기와 막스는 훌륭한 학생이 돼 있었던 데 반해 에르곤과 마르타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교사들이 똑똑하다고 믿은 마기와 막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세세한 지도를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책은 이처럼 실험 사례와 저자의 경험으로 가득하다. 도표나 그래프를 동원한 교과서적인 분석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골치 아플 수도 있는 주제인 사회심리학을 다루지만 읽기에 어렵지 않다. 게다가 단문으로 연결된 문체 덕분에 책장을 넘기기가 수월하다.
저자는 TV 토크쇼에 출연할 정도로 대중성을 인정받은 독일의 사회심리학자다. 문학, 철학, 심리학을 전공한 뒤 인간의 기억 구조, 편견, 동기 부여 등을 주제로 많은 논문을 발표했으며 대중에게 사회심리학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