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에서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히고 있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다. 주인공인 영국군 장교는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라는 이름의 실존 인물이다.
대학에서 건축학과 고고학을 전공한 로런스는 스물한 살 때 당시 오스만제국이 점령 중이던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을 여행하며 처음 아랍과 연을 맺었다.
이후 고대 히타이트 유적 발굴단 연구원으로 3년간 유프라테스 강가에 머물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에 입대했다.
아랍어를 하는 고고학자들로 구성된 특수과에 배치받아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입수한 서류 등을 분석하던 그는 1916년 인생을 뒤바꾸게 되는 명령을 받았다.
적국인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는 아랍 부족을 결속시켜 오스만제국에 저항하도록 하라는 지시였다. 영국의 지배 아래 있던 수에즈 운하를 오스만제국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작전의 하나였다.
사막으로 들어간 그는 메카족 수장인 후세인과 그의 아들 파이잘 등과 함께 아랍 부족을 하나로 묶어 오스만제국에 대한 게릴라전을 시작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기습작전 등으로 아랍 부족은 마침내 그들의 땅에서 오스만제국을 몰아냈다.
이 같은 활약상은 전쟁 직후 미국 언론인 로웰 토머스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토머스는 그의 전쟁 당시 활동을 담은 영화를 만들었고 이 영화는 무려 400만 명이 봤다. 그는 일약 아랍 민족의 해방을 이끈 전쟁 영웅이 됐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학자인 미야자키 마사카쓰 교수는 로런스가 누군지 정작 아랍인은 알지 못한다며 이 같은 평가를 일축했다. 마사카쓰는 로런스가 영국과 아랍 사이를 중개하는 단순 연락책에 불과했는데 토머스가 상상력을 발휘해 영화를 만드는 바람에 영웅이 됐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두 차례나 이름을 바꾸며 공군에서 근무했던 그는 1935년 2월 전역한 뒤 교외의 작은 마을에서 광적으로 좋아하던 오토바이를 타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5월 13일 여느 날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던 그는 자전거를 타고 오는 어린아이들을 피하려다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6일 뒤 47세의 나이로 그는 숨을 거뒀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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