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영-서태지의 ‘랩댄스’한국힙합 시작을 알렸다”

  • 입력 2008년 5월 20일 02시 57분


“거리의 음악인 힙합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갈무리하고 싶었어요.” 한국 힙합의 역사를 다룬 책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를 펴낸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진영 최지호 김봉현 조일동 씨. 이훈구  기자
“거리의 음악인 힙합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갈무리하고 싶었어요.” 한국 힙합의 역사를 다룬 책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를 펴낸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진영 최지호 김봉현 조일동 씨. 이훈구 기자
국내 힙합사 첫 정리 ‘…열정의 발자취’ 출간 4인의 이야기

이를테면 ‘한국 힙합에 대한 사회문화적 보고서’다. 이달 말 발간을 앞두고 있는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한울)는 한국 힙합의 통사를 처음으로 다룬 책이다.

2년 동안 완성된 350쪽의 책에는 한국 힙합의 기원부터 현재까지 꼼꼼히 훑은 글로 빼곡하다. 힙합 뮤지션을 비롯해 힙합 패션몰 대표, 힙합 웹진 등 힙합 분야 종사자 20명의 인터뷰도 함께 엮었다.

이 책을 쓴 6명의 공동 저자는 대중음악과 관련해 책을 내거나 웹진에서 글을 써온 이들이다. 자신을 “평론가보다 마니아 혹은 현장연구가로 불러 달라”고 말한다. 이들 중 최지호(33·축제기획자) 조일동(33·한양대 강사) 김봉현(25·성균관대 4학년) 씨와 힙합 뮤지션들의 사진을 찍은 김진영(27·사진작가) 씨를 15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한국어 랩도 힙합이냐” 끊임없는 논쟁

이 책은 한국 힙합의 시원(始原)을 힙합음악이 쏟아지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이 아닌 1980년대 후반으로 잡았다. 당시 현진영 서태지 등이 ‘랩댄스’라는 이름으로 힙합의 초기 원형을 제시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이태원 클럽에 댄스 지망생이 모여들고 래퍼들 간에 ‘랩 경연’을 벌이던 현상도 힙합 클럽이 들어서던 2000년대 이전인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 게다가 “한국 힙합의 특수성은 거리가 아닌 골방문화”라며 한국에서 힙합이 자리 잡는 데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분석한다.

“1990년대 초반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랩을 하는 것이 힙합이냐를 놓고도 끊임없는 논쟁이 있었어요. 그러한 논쟁들은 한국에서 한창 유행하기 시작한 PC통신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뤄진 것이고 오늘에 이른 거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현상이에요.”(최지호)

“힙합의 주된 소비층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죠. 하지만 이들 중 한국 힙합이 모뎀 시절부터 이뤄낸 문화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적어도 우리가 즐기는 음악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으면 해요. 이 책은 힙합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개론서에 불과합니다.”(김봉현)

○ 비보이 클럽 패션 등 힙합의 문화사도 다뤄

이 책은 힙합에서 파생된 다른 문화 현상에도 시선을 기울인다. 이 중 하나가 새로운 한류 전도사로 떠오른 비보이들을 다룬 것. 저자들은 5, 6년 전만 해도 놀이공원의 매끈한 바닥을 찾아다녔던 비보이들의 땀방울과 함께 비보이 열풍이 한때의 거품으로 사그라지지 않기 위한 충고도 곁들인다. 여기서 이들은 단순히 미국으로부터 이식된 힙합이 아닌,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싹튼 토종 힙합의 힘을 발견한다.

이 밖에 힙합클럽, 힙합패션 등에도 한 챕터씩 할애해 한국의 힙합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쇼 비즈니스계의 강자로 군림하는 해외 힙합 뮤지션과 달리 ‘투 잡’이 필수인 국내 힙합 뮤지션들의 먹고 사는 문제도 조심스레 다룬다.

“언제부턴가 한국 힙합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스타일만 차용하는 일종의 욕망이 됐어요. 멜로디만 강조한 가벼워진 힙합에 대해 비판하는 시선도 많고요. 하지만 음악이든 문화든 주류가 되면 변질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더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끊임없이 논쟁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거죠. 힙합이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책이 그동안의 힙합사를 매듭짓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조일동)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 영상 취재 : 이훈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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