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세 칸 ‘변방’으로 눈돌리다

  • 입력 2008년 5월 20일 02시 57분


남미-동남아 작품들 대거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소외받은 영화에 대한 재조명. 제61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의 특징이다.

최근 몇 년간 칸 영화제는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에 러브 콜을 보내며 “본질을 잃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에는 지난해 60주년을 고비로 일기 시작한 초심으로의 회귀에 대한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는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칸 영화제의 주인공은 남미와 동남아시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개막작을 비롯해 공식 경쟁 부문에 2편씩 올렸다. 싱가포르와 필리핀은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68혁명’ 때 영화제 중단으로 상영되지 못했던 40년 전 필름들도 다시 초청받았다.

○브라질-아르헨티나-싱가포르-필리핀…

남미는 그동안 칸에서 ‘대륙 안배’ 차원에서 부름을 받아 왔다. 하지만 올해 개막작 ‘블라인드니스’는 브라질 감독 페르난두 메이렐리스가 연출을 맡은 작품. 조역에서 당당한 주역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이 작품은 포르투갈 소설가 조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각색했다. 메이렐리스 감독은 2005년 ‘콘스탄트 가드너’로 미국 골든글로브에서 감독상을 받는 등 최근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칸 경쟁부문 참여는 이번이 처음이다.

‘리나 데 파세’의 월터 살리스 감독도 브라질 사람이다. 그는 2004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 독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다. 이번 영화는 가난한 축구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잔잔한 소품.

아르헨티나도 만만찮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이었던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이 ‘머리 없는 여자(La Mujer Sin Cabeza)’로,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이 ‘레오네라’로 그랑프리 경쟁에 뛰어들었다. 파블로 펜드리크 감독의 ‘라 상그레 브로타’, 리산드로 알론소 감독의 ‘리버풀’, 마르코 베르게르 감독의 ‘엘 렐로이’ 등은 비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아르헨티나 영화들이다.

아르헨티나의 유명 인물들도 스크린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미국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일생을 다룬 ‘체’를 공식 경쟁부문에 올렸다. 에미르 쿠스투리차는 축구선수 마라도나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들고 칸을 찾았다.

에릭 쿠의 ‘마이 매직’은 싱가포르 사상 최초로 칸의 경쟁 부문에 올랐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10세 아들의 소통을 다뤘다. 이 영화는 9일 만에 촬영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에릭 쿠는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은 바 있다.

필리핀의 독립영화 감독인 브릴란테 멘도자는 ‘세르비스’로 그랑프리에 도전한다. ‘세르비스’는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장편독립영화 개발비 지원 부문에 선정된 작품이다.

○다시 초대받은 68혁명의 희생양들

스페인 감독 카를로스 사우라의 ‘페퍼민트 프라페’를 비롯한 3편의 1968년 초청작들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의 특별한 손님이다. 프랑스 전역을 회오리로 몰고 갔던 68혁명의 여파로 이 영화들은 상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페퍼민트 프라페’가 상영될 예정이던 영화제 9일째 되는 날. 장뤼크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 프랑스 감독들이 극장에 들어와 영화 상영을 막았다. 68혁명에 동참한 이 감독들은 “보수적인 칸 영화제 집행부가 정치적 고려를 앞세우고 있다”며 영화제 중단을 요구했다. 앨프리드 히치콕, 로만 폴란스키,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 외국 감독들도 이에 동조했다. 결국 영화제는 중단됐고 한 편의 수상작도 없이 막을 내렸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당시 상영이 중단된 ‘페퍼민트 프라페’를 비롯해 ‘주 템, 주 템’, ‘안나 카레니나’ 등이 40년 만에 다시 초청받아 ‘클래식’ 부문에서 상영된다.

칸=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