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즐거움-슬픔 ‘추억공간’
현재 상영 중인 제이미 벨 주연의 ‘할람 포(Hallam Foe)’는 배경이 되는 영국 에든버러의 지붕들이 인상에 깊게 남는 영화입니다.
2000년 ‘빌리 엘리어트’에서 주목받았던 스물두 살 벨의 모습은 에든버러를 수놓은 고딕 지붕의 이미지와 잘 어울립니다. 화려한 장식을 절제하고 경건함을 추구한 중세의 고딕 건축물은 공허한 이상에 시달리는 청춘이 스며들기에 안성맞춤인 듯합니다.
극중에서 주인공 할람을 성장시키는 첫사랑의 사건은 모두 에든버러 지붕 위에서 벌어집니다. 자살한 어머니를 빼닮은 여인 케이트(소피아 마일스)를 처음 발견한 공간, 그녀의 생활을 엿보는 공간, 즐거운 한때를 만들어 주는 공간…. 할람에겐 모두가 지붕 위의 기억으로 남습니다. 고향 집에서 유일한 가족으로 인정했던 누이를 떠나보낼 때도 할람은 넋 놓은 표정으로 지붕 위에 서 있습니다.
감독 데이비드 매켄지는 2003년 ‘영 아담’에서 글래스고와 에든버러를 잇는 운하 구석구석을 음울한 스토리에 버무렸습니다. 매켄지 감독은 ‘할람 포’에서 ‘지붕 이야기’라도 만들려는 듯 지붕 위 공간과 거기서 내려다본 도시의 정경을 반복해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어린 시절 가졌던 ‘집’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 보면, 성장영화의 배경으로 지붕은 적절한 선택입니다. 지붕은 건물과 도시의 표정을 최종적으로 결정합니다. ‘빨간 머리 앤’이 처음 만난 집에 대뜸 ‘초록색 지붕 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지붕의 각별한 이미지 덕분이겠죠.
건축 양식의 특징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열쇠도 지붕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크린을 가득 메운 에든버러의 지붕은 삐죽한 첨탑과 ‘플라잉 버트리스(flying buttress·기울어진 벽받이)’를 특징으로 한 ‘고딕’ 양식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에든버러 시의 명물인 월터 스콧 기념탑 역시 고딕 양식을 따랐습니다. 1840년대에 지어졌지만 위대한 ‘아이반호’의 작가를 기리려면 가장 높이 쌓을 수 있는 건축 양식이 제격이었을 겁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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