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동네가 싫었습니다.”
때는 1960년대 말, 곳은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곱창집 ‘야끼니꾸 드래곤’.
태평양전쟁 중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 용길은 매사에 그저 순응적인 모습.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 영순은 늘 제 분에 못 이겨 곱창집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고기 굽는 냄새와 함께 고향에 대한 재일교포 손님들의 그리움과 한탄이 흘러나온다. 용길의 둘째 사위인 데쓰오처럼 대학까지 나와도 재일교포가 번듯한 직장을 갖기란 쉽지 않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쓸쓸함과 한숨부터 배워야 하는 곳이다.
25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은 서울 예술의 전당과 일본 신국립극장이 공동 기획한 작품이다. 지난달 일본 도쿄의 신국립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뒤 서울에서 선보이게 됐다.
용길의 전처 소생인 다리를 저는 딸 시즈카, 언니의 애인과 결혼했지만 늘 마음이 허전한 리카, 영순의 딸로 가수가 되고 싶은 미카, 용길과 영순이 낳은 내성적인 아들 도키오. ‘피가 섞이거나 섞이지 않은’ 가족이 풀어놓는 저마다의 사연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뭉클함을 주기도 한다. 여기에 사위 또는 예비 사위들과 ‘야끼니꾸 드래곤’의 손님들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의 하모니가 맛깔스럽게 더해진다.
무대 장치 한 번 바뀌지 않는 2시간 45분의 공연 시간 내내 지루하다는 느낌이 없다. 한일 배우들의 연기력도 뛰어나지만 재일교포 정의신 씨의 희곡과 연출 솜씨가 특히 빛나는 작품이다.
묵직한 주제를 부담스럽지 않게 끌고 가면서,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를 세련된 솜씨로 풀어내는 연출력이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야끼니꾸 드래곤’이 강제 철거될 때 울리는 경쾌한 행진곡 소리가 어떤 음악보다도 슬프게 들리며, 마지막 부분에서 “이 동네가 싫었습니다”라고 시작한 도키오의 말이 “(사실은) 이 동네가 좋았습니다”라는 울먹임으로 마쳐질 때, 콧날이 절로 시큰해진다.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2시·7시 30분, 일요일 오후 3시, 2만∼4만 원. 02-580-1300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