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극작과 현장의 거리감, 이젠 즐겨요”

  • 입력 2008년 5월 22일 02시 55분


연극 ‘거트루드’ 희곡-연출 맡은 스타극작가 배삼식 씨

3년 전 워크숍(극단 내부에서 연습을 겸한 공연) 형식의 연극 ‘철수 이야기’의 연출을 맡았던 배삼식(38) 씨는 “앞으론 연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10년 가까이 희곡 작업만 해 온 그에게 연출은 낯설고 편치 않은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스타 작가 배삼식 씨. 극단 ‘미추’의 대표 상품인 마당놀이 대본부터 히트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벽 속의 요정’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대본들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지난해 ‘열하일기만보’로 동아연극상 희곡상과 대산문학상(희곡부문)을 수상하면서 명성을 ‘굳혔다’.

그가 다시 연출에 도전한다. 6월 5∼15일 서울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거트루드’.

3년 전 ‘철수 이야기’가 워크숍이었으니 연극 팬들과 직접 만나는 연출로는 데뷔작이다. ‘거트루드’ 대본도 그가 썼다.

“연출 안 한다고 했다면서요”라고 옛일을 들추자, 배 씨는 “그러려고 했는데…”라고 느릿하게 말하면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후배에게 떠밀려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에 들어가면서 희곡을 쓰기 시작했듯, ‘거트루드’를 맡기로 했던 연출가가 사정이 생겨 자리를 비우면서 그가 지목됐다.

“저는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쪽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배 씨. 20일 살짝 들여다본 연습실에선 어색하지 않은 연출가 태가 났다.

“다들 한쪽만 상대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데, 이번 무대장치는 좌우 모두가 객석이니까 몸을 고루 써야 한다는 걸 생각합시다.” “다시, 잔 드는 장면부터 다시.” “그쪽이 아니고… 몸을 틀어서 들어오세요.”

극작가가 연출에 도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작품을 쓸 때 머릿속에서 무대 위 장면을 떠올린다. 현장이 그가 그린 그림대로 나오지 않을 때 연출을 병행하는 작가의 상실감은 더욱 크기 쉽다. 거리감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처음엔 서투르고 조급했고, 전하고 싶은 걸 배우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고민도 됐고…. 연출가가 품 넓게 흡수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몸으로 습득했어요. 가능성이 보인다 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신기루처럼 그런 느낌이 사라지고…. 믿음을 갖고 견뎌야 한다는 걸 알았지요.”

‘거트루드’라는 작품은 무게감도 간단치 않다. 고전에서 소재를 즐겨 찾아온 그는 이번엔 ‘햄릿’을 바탕으로 희곡을 썼다. 배경은 현대의 술집 ‘엘시노어’, 주인공은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다. 원작에서처럼 햄릿 대신 독주를 마시고 죽어버려야 하는 거트루드는 배 씨의 극 속에서 독주를 거부하면서, ‘복수’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한다. 그가 천착한 문제이기도 하다.

“요즘 들뢰즈가 쓴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보면서, 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티베트 사태를 보세요. 폭력은 오늘날에도 반복, 재생산되고 학습되지 않습니까. 복수란 폭력에 대한 폭력임에도 선의 이름으로 자행되지요. 복수극으로서의 ‘햄릿’을 들여다보니 폭력에 대한 교과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상을 없애는 게 과연 폭력에 대한 해결책인지, 그것이 진정한 선인지에 대해 배 씨는 관객에게 질문한다.

한 달째 매일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 연습해 왔고, 아침부터 부분 연습을 하기도 수차례. 그는 “배우들의 연기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나올 때,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부대낄 때 재미있다”고 했다. 이제 그에게 연출가라는 옷은 편안한 것처럼 보였다. 평일 7시 30분, 토요일 오후 3시·7시 30분, 공휴일 2시(일요일 쉼). 2만∼2만5000원. 02-580-1300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