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건물주는 지하층을 못 만들고 유적을 덮어 보존한 뒤 그 위에 건물을 세우거나 신축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유적이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되면 국가가 유적을 매입하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다.
영동빌딩 건물주 이영길 ㈜영동시티개발 대표는 당초 “내 땅을 마음대로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불만을 쏟아냈지만 마음을 바꿨다. 시전 행랑 유구를 보존하면서도 그 자리에 건물의 지하층까지 짓기로 한 것이다.
이 대표는 10억여 원을 들여 시전 행랑 유구 위에 유리 바닥면(지하 1층·약 530m²)을 깔아 유적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고 지하 1층은 출토 유물을 전시해 ‘조선시대 시전 역사 전시관’으로 꾸미기로 했다. 건물 이름도 ‘육의전 빌딩’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 방안을 제안한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21일 “최근 문화재위원회가 이 계획을 통과시키고 유적을 보존하는 조건으로 유적 아래에 지하 2, 3층을 건축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며 “공사 기간은 1년 6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결정은 최근 충남 당진군의 한 공장 용지에서 발굴 조사 중이던 유적을 사업주 측이 굴착기로 훼손하는 등 문화재를 개발의 걸림돌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해지는 상황에서 문화재 보존과 개발이 ‘윈윈’할 수 있는 사례로 주목된다.
이 전시관은 조선시대 시전과 피맛골의 역사 소개, 시전 행랑에서 출토된 자기와 기와 조각 유물뿐 아니라 현대∼시전 행랑 유구 토층의 단면을 보존처리해 전시하는 갤러리 형태로 운영된다.
이에 따라 지하 2.2m에서 발견된 시전 행랑 유구(두께 50∼80cm)는 발굴 조사가 끝나는 대로 경화 처리를 거쳐 형태 그대로 떠낸 뒤 지하 1층 유리 바닥(지하 3m) 아래 보존된다.
전시관 건립과 운영은 황 소장이 맡고 고고학 건축, 전시, 보존처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유구보존자문위원단이 구성된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건립까지 7년이 걸린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는 보존 결정이 억울해 사업을 포기할까 생각했다”며 “종로 한복판에 조선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관을 건립해 유적을 보존하고도 경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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