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죄는 인간의 본질” “시인의 세계, 자연과 흡사”

  • 입력 2008년 5월 22일 02시 55분


‘2008서울, 젊은 작가들 페스티벌’서 만난 2명의 해외 작가

《‘젊음의 거리 홍익대 앞이 젊은 문인들의 축제로.’ 요즘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 가면 반가운 얼굴이 많다. 24일까지 서교동 KT&G 상상마당 등에서 ‘서울, 젊은 작가들 페스티벌(SYWF)’이 열리기 때문. 이번 축제에는 한국과 외국의 젊은 작가가 20명씩 참여한다. 소설가 정이현 김중혁 백가흠 권여선 씨 등도 볼 수 있다. 한국문학번역원 주관으로 2005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이 행사에는 국내에 책이 출간된 해외 작가들도 참석했다. 일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후미노리(31)와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아시아 문단에서 주목받는 몽골 시인 루브산도르지 울지투그스(36)도 그들 중 한 명이다. 》

▼日 소설가 나카무라 후미노리▼

현대인은 무기력에 중독된 듯

무겁지만 더 깊게 파고들 생각

“제 소설의 영원한 화두는 ‘인간’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본질적 의미에 관심이 많습니다. 인간이 가진 어두움이나 죄와 두려움, 공포는 그 본질을 대변하죠.”

19일 오후 상상마당 1층 카페에서 만난 소설가 나카무라 후미노리(사진)는 예상과 동떨어진 외모였다. 2006년 국내에 소개된 그의 소설 ‘흙 속의 아이’는 비주류의 극단적 절망을 다룬 작품. 하지만 그는 장난꾸러기를 연상케 하는 수줍은 미소를 지녔다.

그는 “평소에도 소설과 외모가 다르단 소릴 많이 듣는다”면서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면이 있는 것처럼 평소 생활은 보통 사람과 별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2002년 소설 ‘총’으로 신초신인상, 2004년 ‘차광’으로 노마문예상을 받았다. 두 소설 모두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고 결국 2005년 ‘흙 속의 아이’로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이 소설은 일본에서 10여만 부가 팔렸다. 그는 “상은 고맙지만 무슨 상 수상자보단 그냥 소설가 누구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무기력’에 중독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확한 목적 없이 흘러가는 삶이죠. 그런데 이 무기력에는 ‘공포’가 잉태되어 있어요. 추락의 공포, 절망의 공포, 삶 자체에 대한 공포…. 그 두려움의 끝에서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대처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흙 속의 아이’는 하루하루가 고통 자체인 ‘나’가 주인공이다. 부모에겐 버려지고 자신을 맡은 친척은 연일 폭력을 휘두른다. 성인이 되어도 나아질 게 없다. 택시강도를 당하고 폭력배에게 시비나 걸다 두들겨 맞는다. 그 속에서 ‘낙하’는 두렵지만 묘한 쾌감을 안긴다. 작가는 “추락은 무섭고 싫은 일이지만 자체만 놓고 보면 쾌감이 있다”면서 “절망에 몸부림치지도 못하는 피동적 인간 심리가 지닌 끝에 닿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거운 주제지만 그는 계속 부딪쳐 볼 생각이다. 그는 “요즘 세상에 특이한 취향이란 소리도 듣지만 그 때문에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몽골 시인 루브산도르지 울지투그스▼

돈-명예 관심없고 그저 글이 좋아

한국의 형형색색 단풍에 넋 잃어

루브산도르지 울지투그스(사진).

19일 만난 발음도 어려운 이 몽골 시인은 참 ‘단아’했다. 언어는 달라도 얼핏 한국인 같은 옅은 미소. “시인으로 사는 것은 배고프지만 행복한 일”이라는 말투에서 엿보이는 문인의 자부심도 비슷했다. 하늘과 바람, 대지와 별을 사랑한다는 이국 시인의 마음은 묘한 공명의 울림을 줬다.

―지난해 국내에 시집 ‘나뭇잎이 나를 잎사귀라 생각할 때까지’(이룸)가 출간됐다.

“내 시집이 ‘솔롱고스’에서 나오다니 너무 기뻤다. 아, 몽골에선 한국을 솔롱고스, 무지개 나라라 부른다. 2002년 첫 방문 때 이유를 깨달았다. 가을 무렵이었는데 형형색색 단풍에 한참 넋을 잃었다. 몽골로 돌아가면서 딱 하나 가져간 게 단풍잎이었다. 지금도 내 시집에 꽂아뒀다.”

―제목의 잎사귀와 단풍, 묘하게 잘 어울린다.

“난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이다. 평생 꿈이 복잡한 인간사를 벗어나 자연과 벗하며 사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요구하는 게 없다. 그냥 주기만 한다. 시인의 세계는 자연과 흡사하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시인은 돈이나 명예에 관심 없다. 그냥 글이 좋고 자연이 좋다. 시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번역이라 짐작하기 어렵지만, 몽골 전통 시 어법을 구사한다던데….

“옛 시도 많이 참조한다. 몽골 시는 두운을 맞추는 전통이 있다. 하지만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몽골인은 유목민족이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을 떠돈다. 그리고 대자연 속에서 시를 지어 노래한다. 그 마음을 잇는다는 측면에선 내 시는 전통 시다.”

―몽골 대표신문 ‘아르딩 에르흐’의 기자였다고 들었다.

“기자 생활도 나쁘진 않았다. 직업이 있으니 돈에 여유가 있더라.(웃음) 몽골도 시인을 ‘배고픈 직업’이라 부른다. 하지만 문학엔 세상 모든 게 들어 있어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다. 다만 최근 문학주간지를 창간했다. 시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로 언론은 소중하다.”

―시를 읽는 한국 독자들에게 한마디.

“언제나 자연과 함께하길. 그 속에 시도 있다.”

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사진=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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