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모차르트’로 불렸던 소년이 ‘청년 베토벤’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독일 본에서 열린 국제 베토벤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던 유영욱(30) 씨가 2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귀국 첫 리사이틀을 갖는다.
유 씨는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열두 살 초등학교 5학년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자신이 작곡한 작품 발표회를 가졌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면서 작곡한 ‘슬픈 노래’, 첼로와 바이올린, 피아노가 어우러지는 밝고 발랄한 분위기의 ‘귀여운 내동생’, 반음계 스케일로 작곡한 ‘소용돌이’ 같은 작품이었다. 제목은 동요처럼 보이지만 화성적으로나 대위법적으로 흠 잡을 곳이 없이 완벽한 형식을 갖춘 곡들로, 그에게 ‘신동 모차르트’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TV와 라디오, 잡지 등이 앞다퉈 그를 찾았다.
○ 12세때 자작곡 발표… “신동 모차르트” 찬사 받아
“그때 저를 그냥 내버려뒀더라면 좀 더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작품을 써내려갔을 텐데…. 어른들의 기대가 커지니까 잘해야 된다는 부담이 커졌어요. 예원학교 시절 두 번째 작곡 발표회를 할 땐 더 그랬지요.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선 벽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신동들은 그 벽이 너무 높아요. 결국 주위의 기대가 쌓아놓은 높은 벽에 갇혀 버리게 되죠. 그 벽을 뛰어넘지 못하면 비참한 낙오자가 되고 말지요.”
그는 중학교인 예원학교 시절 두 번째 작품 발표회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 2년에 불과한 ‘신동 생활’이었지만 그의 삶에 남긴 여파는 컸다.
신동은 평범하게 살면 낙오자 취급을 당하는 법.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녔다. 작곡도 그만뒀다. 대신 미국 줄리어드음악원에서 피아노에 전념했다. 외로운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 그는 수무 살에 스페인 산탄테르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낙소스에서 음반을 발매하고, 250회 이상의 미주-유럽 순회연주도 가졌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수많은 연주생활을 하다 보니 또다시 벽에 부닥쳤다.
○ 오랜 방황 접고 작년 獨 베토벤 피아노 콩쿠르 1위로 재기
그는 “뒤늦게 찾아 온 두 번째 ‘신동생활’에 불과했다”며 “역시 인정은 받을 만한 준비가 돼 있을 때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약 5년 동안 연주보다 자신의 마음을 여는 데 주력했다.
또한 머릿속에 짜놓은 완벽한 연주 청사진을 그대로 복사해내는 자신의 ‘형이상학적 연주’ 스타일도 버렸다. 그는 “훌륭한 연주를 들으면 팔뚝에 털이 쭈뼛하게 서듯이, 머리보다 몸이 먼저 전율하게 하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베토벤 국제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9년 만의 우승자로 뽑혔을 때 그는 “베토벤이 살아서 피아노를 친다면 유영욱처럼 연주했을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유 씨는 “베토벤의 곡은 웅장하고 당당한 ‘음악의 귀족’인데 연습노트에 매달리다 보면 귀족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일꾼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라며 “모든 우주가 움직임을 멈추고 내가 첫 건반을 누르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심정으로 건반을 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음악회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샤브리에의 ‘환상적인 부레’,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나단조를 연주한다. 건반 위에 온몸을 던져 격정적으로 폭발하다가도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 부분에서 숨을 멈추게 할 만큼 긴장감을 자아내는 유 씨. 이번 연주는 그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3만∼7만 원. 02-548-4480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