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좋은 글은 초상화와 같다…‘조선의 마지막 문장’

  • 입력 2008년 5월 24일 03시 01분


인천 강화군에 있는 영재 이건창의 묘. 비석 하나 없이 외롭게 있어 잊혀진 명문장가의 삶이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사진 제공 글항아리
인천 강화군에 있는 영재 이건창의 묘. 비석 하나 없이 외롭게 있어 잊혀진 명문장가의 삶이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사진 제공 글항아리
◇ 조선의 마지막 문장/이건창 지음·송희준 옮김/408쪽·1만6000원·글항아리

《“주된 뜻(주의·主意)이 있으면 반드시 여기에 대적하는 뜻(적의·敵意)이 있어야 합니다. 문장을 별도로 만들어 적의로 주의를 공격해야 합니다. 주된 뜻은 갑옷처럼 방어하고 대적하는 뜻은 병기처럼 공격하니 갑옷이 견고하면 병기는 저절로 꺾일 것이고 누차 공격해 여러 번 꺾이면 주된 뜻이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면 곧바로 대적의 뜻을 거둬 포로를 잡아들임으로써 주된 뜻이 더욱 높이 밝게 드러날 것입니다.” (17, 18쪽· ‘글을 어떻게 지어야 훌륭한 문장이 될까?’ 중에서)》

좋은 글은 초상화와 같다

눈 코 입 평범한 묘사보다

수염처럼 특징을 부각하라

고서를 번역한 책으로 400여 쪽에 이르는데 술술 읽힌다. 촌철살인 문장이 날카롭다가 깊은 성찰이 드러나고 인간을 향한 따뜻한 애정이 느껴진다. 때로는 문장은 숨 가쁘게 차오르다가 차분하게 숨을 고르기도 한다.

원문 저자가 “눈을 현란하게 만드는 글보다 아름다운 리듬이 있는 글이 조화로운 글”이라고 말했는데 스스로 그 본보기를 제시한 셈이다.

저자는 영재 이건창(1852∼1898). 낯선 이름이지만 세속적 글쓰기를 멀리하고 순수하고 강건한 체의 고문을 추구한 19세기 명문장가다.

이 책은 이건창의 당호를 딴 문집 ‘명미당(明美堂)집’을 처음 완역해 총 180여 편의 산문 가운데 50여 편을 뽑은 것이다. 글마다 붙은 옮긴이의 해설이 본뜻의 이해를 돕는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조언, 논설과 평론, 충정과 절의(節義)에 대한 매서운 글부터 가족을 향한 애틋한 심정, 민초들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한데 담겼다.

문장 이론이 유독 눈에 띈다. 이건창은 창강 김택영(1850∼1927), 매천 황현(1855∼1910)과 함께 대한제국 때 3대 문장가로 불린다. 김택영은 고려 및 조선시대 뛰어난 고문가(古文家) 9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건창을 꼽을 정도다.

자신의 글에 자부심이 대단했던 이건창. 글을 어떻게 지어야 훌륭한 문장이 되는지 물어온 학자 여규형(1848∼1922)에게 답을 보낸다.

“무릇 글을 지으려면 반드시 먼저 뜻을 얽어야 한다.”

처음, 끝, 중간으로 뜻의 뼈대가 갖춰지면 이 뜻이 연속하고 관통하게, 분명하고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붓을 놀려 써내려 간다는 것.

“어조사 따위의 쓸데없는 말을 구사할 겨를이 없으며 속어 사용을 꺼릴 겨를이 없다.” 그 다음 “언어를 다듬어야 한다”.

언어를 다듬을 때는 “한 글자를 놓는 데 전전긍긍해 마치 짧은 율시 한 편을 짓듯 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백미는 그 다음이다. “주된 뜻에 대적하는 뜻이 있어야 한다.”

주제를 돋보이게 하려면 반론을 함께 제기하고 이 반론이 설득력 없음을 보이라는 것이다. 주된 뜻과 대적하는 뜻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없으면 훌륭한 글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긴 것은 짧게 하고 짧은 것은 길게 하며 엉성한 것은 긴밀하게 하고 긴밀한 것은 엉성하게 해야 한다. 느슨한 것은 촉급하게 하고 촉급한 것은 느슨하게 하며 드러나는 것은 숨기고 숨은 것은 드러나게 해야 한다.” 수없이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이건창은 글을 쓴 뒤 2, 3일 보지 않고 마음에도 두지 않았다가 다시 보고 남의 글 보듯 엄정하게 봐야 그제야 글을 제대로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좋은 문장은 초상화 그리는 것과 같아 눈, 코, 입 같은 평범한 사실을 나열하지 말고 눈썹과 뺨의 수염처럼 그 사람만의 특징을 집중적으로 묘사해야 한다고 일갈한다.

실제로 이건창은 알아줄 사람 없는 백성들의 행적을 수십 편 전기로 남겼는데 가계와 생애는 최대한 줄이고 특징적인 면을 부각했다.

문집에 실린 유 씨 노인 이야기가 그렇다. 유 씨 노인은 남의집살이하며 평생 짚신을 삼다 일흔 살에 죽었다. 이건창은 이웃집 유 씨 노인의 평범한 삶을 성현에 잇는다.

“성현의 학업이 후세에 전해지듯 그가 만든 짚신을 세상 사람들이 신고 다닌다. 성현은 그들이 만든 도를 세상 사람들이 행하지 않아 근심했지만 유 씨 노인의 짚신은 뜻대로 모두 신고 다니니 걱정이 없다.”

스물두 살에 세상을 떠난 첫 부인을 그리워하는 글에서는 꼿꼿한 선비답지 않은 고독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침실은 고요해 적막하고 화장대에는 먼지가 보얗게 앉았네. 낮에 생각하면 도움 주는 친구 없어진 것을 한스러워하고 밤에 꿈꾸면 상스럽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네. 아! 슬프다. 봄바람이 때맞춰 불어와 만물이 생기가 나는데, 어찌하여 반짝반짝하던 눈동자는 다시 볼 수 없고 다정한 말소리는 다시 들을 수 없는가?”

이 책의 명문장들은 원문을 간결, 명료하게 우리말로 풀어쓴 옮긴이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 옮긴이는 30년간 한문 공부하며 서당을 열어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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