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실대는 푸른 바다에 둘러싸인 작은 섬.
민들레는 뭍으로 간 엄마 대신 할머니와 함께 이곳 밤섬에 산다. 친구라곤 이장댁 아들 진우뿐이지만 아이는 그늘이 없다. 엄마가 보내 준 냉동피자에 감격하고 오카리나란 악기를 불며 즐거워한다. 서울에서 온 선생님들이 한 달을 못 버티고 떠나지만 ‘서울까투리들…’ 하고 콧방귀 한 번이면 속이 시원한 소녀.
이런 말괄량이 소녀에게 수난이 시작되니, 서울에서 전학 온 보라의 등장과 엄마의 재혼에 대한 할머니의 실토 때문이다.
단짝 친구 진우가 서울내기 보라에게 쩔쩔매며 볼이 붉어지는 게 못마땅해 ‘시비걸기’로 일관하는 들레. 서로 신경을 거스르다 두 소녀는 결국 주먹다짐까지 해버린다. 게다가 엄마가 다른 곳에 시집간다고 할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게 어린 소녀의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시종일관 따스하고 잔잔해 독자들의 감성을 울린다. 할머니는 반항하는 들레에게 빗자루를 들고 혼내다가도 몰래 눈물을 훔치고 ‘오랜만에 뽀끄땡스(포크댄스)나 출까?’ 하고 묻는다. 사과할 방법을 찾지 못해 눈치를 보다 들레가 엄마 보러 갈 배삯을 벌기 위해 비단고둥을 줍는 것을 도와주는 보라, 텐트를 치고 아이들을 위해 ‘비밀본부’를 만들어 준 멋진 담임선생님, 그리고 어린 딸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늘 걱정하고 마음 아파하는 엄마의 사랑. 들레를 제자리에 돌아오게 하는 건 주변 사람들의 진심어린 마음이다. 물론 들레는 자신을 향한 그들의 우정과 사랑에 감사할 줄 아는 소녀다.
‘들레는 이미 엄마를 용서했다. 엄마가 정말로 들레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남의 엄마가 됐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누가 뭐래도 들레 엄마였다.’
들레는 마치 밤송이가 여물 듯 어느새 자신이 제법 어른스러워졌음을 느낀다. 새아버지와 함께 다시 오기로 한 엄마를 기다리며 들레는 방문을 왈칵 열고 할머니를 향해 외친다.
“할매! 우리 뽀끄땡스 한번 출까?”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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