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함을 품에 안은 채 무작정 아프리카 케냐로 떠난 열일곱 살 소년.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는 ‘날밤 까며 공부하던’ 평범한 대한민국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이런 무모한 여행을 홀로 감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건 전까지, 성민 역시 제도권 교육에 충실한 친구들과 다르지 않았다. 마땅치는 않았으나 극성맞은 엄마가 정해준 과외 스케줄에 따라 공부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여자친구 수회가 자살을 택하면서, 아이는 자신이 마주하고 있던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입시전쟁을 치른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생각을 한다.
‘열나게 외우고 또 외워야 하는 개 같은 내 인생, 팝콘처럼 튀어 나가버리겠다!’
죽은 수회는 성적 문제와 공부에 치일 때면 늘 아프리카 이야기를 했다. ‘타오르는 태양 아래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우뚝 솟아 있을 그곳, 얼음 속에 갇힌 표범이 시퍼런 눈알을 굴리고 있을 그곳’ 킬리만자로로 가고 싶다고 말이다. 물론 죽기 전 남긴 문자도 다르지 않았다.
‘킬리만자로에 데려다 줘.’
사랑했던 친구를 잃은 슬픔에 현실에 대한 염증이 더해졌던 성민은 그 문자를 지령 삼아 지긋지긋한 현실을 박차고 나간다. 엄마는 몸져눕고 학교에선 실종됐다고 난리지만 그는 꿋꿋이 수회의 유골함을 들고 모험을 감행한다.
아프리카로 대변되는 공간은 현실의 도피처이자 이상향. 거친 자연의 숨결이 들리는 곳, 작렬하는 태양 아래 뛰어노는 야생동물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은 주입식 교육과 지옥 같은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겐 선망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는 여행하며 여태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본다.
가난에 찌든 비참한 아프리카 주민들의 현실,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 희망 없이 무기력한 그곳의 젊은이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소매치기를 당하고, 배가 고파 수회의 유골함까지 훔쳐가는 그들을 보며 성민은 경악하고 만다. 상상과는 너무도 다른 그곳의 현실을 하나씩 직시할수록 죽음을 택한 수회의 나약함을 탓하게 된다. 또한 모든 것에 불평불만이었던 스스로의 어리석음도 함께 반성한다.
여행은 한 가지 물음에도 수만 가지의 대답을 준다. 이 대답 중 성민이 찾은 건 현실에 직접 부닥치지 않고 도피해서는 그 어디서도 이상향 같은 것은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입시지옥이란 것이 우리의 나약함을 정당화시키는 무기가 될 수는 없으며 그 어디에도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천국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결국은 킬리만자로까지 가게 되지만 성민은 차마 그곳에서 수회에게 작별을 고하지 못한다. ‘이 미칠 것 같은 태양 아래 수회를 남겨 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유골함을 안고 ‘가자, 수회야’ 하고 말한다.
소설의 마지막 순간, 그가 되돌아가야 할 그곳이 어떤 모습일지 사뭇 궁금해진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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