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담론 떠나 세대-계층 등 종합 분석”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 대학을 다녔던 사회학자들이 ‘산업화’ ‘민주화’ 담론에 치중했던 ‘80년대식 문제의식’에서 벗어나 탈이념과 탈계급, 생활정치 등 새로운 시각에서 한국 사회를 조망해 보자는 모임을 만든다.
28일 출범하는 한국정치사회학회가 그것이다. 발기인으로 참여한 40명 중 회장을 맡은 임현진(사회학) 서울대 교수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40대다. 이른바 ‘386’으로 불리는 학자도 상당수 참여했다. 한국에서 정치사회학회가 출범하는 것은 처음으로 지난 정권에서 학자들이 과도한 이념이나 정치 지향적인 태도를 보인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담고 있다.
학회는 창립사에서 “산업화 30년, 민주화 20년을 넘어서 이제 우리 사회는 질 높은 민주주의를 성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며 “정치사회학 연구자들은 때로는 현실에 과도하게 개입하기도 했고, 거꾸로 현실과 의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건국 60주년을 놓고 아직도 ‘건국’이냐 ‘정부수립’이냐를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제 한국의 사회, 특히 정치는 계급적 성향이나 진보, 보수 등 과거의 담론으로 가르는 시대를 지났으며 세대, 남녀, 계층 등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고 학회 결성 의의를 밝혔다.
부회장을 맡은 김호기(사회학) 연세대 교수는 “386 학자들이 정치 논리에 과도하게 개입한 것도 사실이지만 현실을 외면한 채 상아탑에 스스로를 가둔 교수들도 있었다”며 “이념적 틀을 깨고 학문적 접근을 통해 정치와 사회의 관계를 모색할 때”라고 말했다.
이 학회의 성격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창립 심포지엄은 28일 오후 1시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당에서 ‘정당정치와 한국사회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다. 임 교수는 “시민의식은 성장했는데 정당은 오히려 후퇴하는 현실을 우선 짚어 보고자 정한 주제”라고 설명했다.
김수진(정치학) 이화여대 교수는 미리 낸 발표문 ‘정당정치와 계급정치’에서 “지주, 중산층, 노동자 등 특정 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정당은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확산됐지만 서구 사회에선 이미 1970년대 이후 급속히 탈계급화하고 있다”며 “이런 글로벌 추세를 볼 때 한국에서 계급정치가 정당정치의 지배적 특성이 될 것으로 믿는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김호기 교수는 ‘세계화 시대의 욕망의 정치와 가치의 정치’에서 “오늘날 한국의 정치는 현대적 정치와 탈현대적 정치가 공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현대적 정치’의 대표적 양상으로 ‘욕망의 정치’를 꼽았다. 뉴타운, 특수목적고 등 물질적 이익에 따라 표가 갈리는 정치다. 반면에 ‘탈현대적 정치’에선 ‘가치의 정치’가 강조된다. 물질적 풍요보다 탈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게 특징이며 최근 ‘쇠고기 파동’이 이런 성향의 단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조대엽(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운동정치의 제도화와 정당정치의 위기’라는 발제문을 통해 “현대 사회는 갈등이 일상화된 ‘신갈등사회’”라고 규정하고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정당정치가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선 생활정치를 지향하는 프로그램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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