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몬다비가 대체 누구길래, 와인 황제까지 고개를 숙이는 걸까.
○ 어머니에게 와인 사랑을 배우다
이탈리아 이민자 아들로 1913년 미국 미네소타 하이빙에서 태어난 로버트 몬다비는 집에서 어머니에게 와인을 익혔다. 바에서 일하던 어머니 로자는 탁월한 요리 솜씨에 매 끼니마다 와인을 마시는 와인 마니아.
식사 테이블에 항상 오른 와인을 보며 아이였던 몬다비는 친근감을 갖게 됐다. 광부였던 아버지도 아내 덕에 와인을 좋아하게 됐고, 1923년 캘리포니아 로디로 이사 후 아예 와인 사업을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도운 그는 스탠포드 대학교(경영학 전공) 졸업 후 본격적으로 아버지를 도와 와인 사업을 일구고, 1943년 와이너리를 사들여 나파밸리로 진출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은 뒤 보다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고자 하는 그는 미국 전통 생산 방식을 선호하는 동생 피터와 크게 싸우고 가족 사업에서 하차한다.
○ 무언가 시작하기에 50은 늦은 나이가 아니다
이후 그는 미국에서 절대 찾을 수 없는 맛을 만들기 위해 프랑스로 향했고, 보르도에서 주요 레드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을, 부르고뉴에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품종을 공부한다.
오랜 담금질의 시간을 거쳐 1966년 53살의 나이에 나파밸리에 자신의 이름을 딴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를 세운 그는 당시 걸음마 수준이던 캘리포니아 와인을 세계적인 수준에 올려놓는다.
저온 숙성, 스테인레스 스틸 탱크 사용, 유기 농법 도입 등은 모두 그가 일궈낸 작품. 이를 통해 미국 고급 와인의 교과서로 불리는 ‘나파밸리 까베르네 소비뇽’부터 고품질의 대중 와인 ‘우드브릿지 까베르네 소비뇽’까지 생산한다. 여기에 프랑스 바롱 필립 드 로칠드와 합작으로 만든 ‘오퍼스 원’은 로버트 몬다비의 아이콘이 된다.
1981년 나온 이 와인의 첫 빈티지는 한 상자(12병)에 2만4000달러라는 경이적인 가격으로 팔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 몬다비는 죽었지만 그의 정신은 영원하다
와인에 대한 열정은 고스란히 자선사업으로 이어졌다. 대중적인 와인 회사로 자리매김하면서 벌어들인 막대한 돈으로 그는 나파밸리에 음식문화박물관인 ‘코피아’를 세우고 2000만 달러를 기부했고, 데이비스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에는 3500만 달러를 아낌없이 건넸다.
이 대학교는 기부금 가운데 2500만 달러로 와인과 음식 과학 교육을 위한 ‘로버트 몬다비 인스티튜트’를 설립했고, 1000만 달러로는 캠퍼스 내에 아트 센터를 세웠다. 이 금액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역사상 개인 기부 중 최대 규모. 더 많은 사람들이 와인과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몬다비의 정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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