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와인 과외날. 아이스 버켓에 화이트 와인이 한 병 들어 있고, 그 옆 그릇에 영양 굴밥이 소담스럽게 쌓여 있다. ‘웬 굴밥이람’하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자 김은정이 수다스럽게 맞이한다.
“이 곳 와인 바 사장 친구가 통영에 사는데 오늘 생굴을 보내왔데. 그걸로 만든 굴밥인데 맛이 끝내 줘. 그래서 오늘은 굴과 어울리는 와인을 골랐지. 바로 ‘샤블리’야.”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병을 보니 ‘죠셉 드루앵 샤블리(Joseph Drouhin Chablis)’라고 적혀 있다. 죠셉 드루앵은 와인 회사명 같은데 샤블리는 뭐지. 지역인감.
“그래 맞아. 샤블리는 프랑스 부르고뉴 제일 북쪽에 위치한 지역 이름이야. 이제 프랑스 와인은 라벨을 보면 대충 뭔지 알겠지. 샤블리는 부르고뉴의 관문 역할을 해서 ‘부르고뉴의 골든 게이트’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곳인데 최고급 화이트 와인의 대명사로 통해. 죠셉 드루앵은 이곳에서 뛰어난 샤블리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은 회사 중 하나이고.”
맛이 궁금했다. 잔에 코를 갖다 대자 향긋한 과일향과 민트향이 상쾌하다. 입 속을 채우는 신선함은 뇌 속까지 청량한 공기를 불어넣는 느낌이다. 목을 타고 내려가 와인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여운이 기분 좋게 남는다. 굴밥을 한 입 먹고, 와인을 다시 입 안에 채우자 씹히는 느낌이 근사하다.
“야∼이거, 좋은데.”
“어때 제법 훌륭하지. 생굴이랑 먹으면 사실 더 좋은 맛을 느낄 수 있지만 굴밥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그런데 그거 알아. 샤블리가 굴과 이처럼 잘 어울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거.”
“무슨 이유?”
“샤블리가 수천만 년 전 중생대 때 바다여서 그래. 이 곳은 부르고뉴의 다른 지역과 달리 ‘킴메리지앙’이라는 토양으로 돼있는데 주 성분이 진흙, 석회석, 백악질, 그리고 화석화된 굴 껍질로 이뤄졌어. 이 토양은 굴 껍질의 아로마를 간직한 특유의 미네랄 향을 담아냈고, 여기서 자란 포도로 만든 샤블리가 굴과 환상적인 궁합을 만든 거지. 이 같은 궁합을 전문가들은 ‘마리아주’라고 불러.”
“정말 일리가 있는 얘기네. 그런데 생굴과 더 잘 어울린다면서 왜 굴밥을 준거야?”
“날씨가 더울 때 생굴 먹어본 적 있어? 없지. 서양에서는 일년 열두 달 중 ‘R’자가 들어가지 않은 달, 즉 5월(May), 6월(June), 7월(July), 8월(August)에는 생굴을 먹지 않아. 생굴의 육질이 연화돼 맛이 없고 독성이 있어서지. 우리나라는 서양처럼 까다롭게 지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사불여튼튼이잖아. 참 샤블리는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든다는 것도 잊지 마.”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KISA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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