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공이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관중석에서는 폭죽이 터지고 색색의 테이프가 뿌려졌다. “대한민국 만세” 소리와 함께 태극기도 펄럭였다.
1980년 5월 28일 일본 도쿄 근교 가와사키 야구장.
일본 프로야구 최초로 3000안타 대기록을 달성한 자랑스러운 한국인 장훈은 그렇게 경기장을 한순간에 뜨겁게 달궜다.
전날까지 2998개의 안타를 친 그는 롯데 마린스의 지명타자로 나선 이날 1회말 공격에서 2루타를 때려내며 대기록의 전주곡을 울렸다.
2, 3번째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난 그는 6회말 1사 2루에서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팀 한큐 브레이브스의 야마구치 투수가 약간 높게 던진 초구를 향해 그의 배트가 원을 그었다.
대기록을 자축이나 하듯 그는 3000안타를 극적인 홈런으로 장식했다.
이날 경기는 그가 프로데뷔 첫 안타를 쳤던 경기를 연상시켜 더욱 극적이었다.
1959년 4월 11일 한큐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그는 2루타로 첫 안타를 기록한 뒤 다음 타석에서 첫 홈런까지 때려냈다.
“18세 때 프로야구에 투신해 배불리 먹고 작지만 내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염원과 투쟁심으로만 뛰었을 뿐, 이처럼 화려한 금자탑을 이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약간 상기된 얼굴로 소감을 말하는 그의 모습을 당시 동아일보는 엄숙하기조차 했다고 전했다.
실제 그랬다. 소감에서 투쟁심으로 뛰었다고 밝혔듯이 그는 매 경기를 전투하듯 치러냈다.
“내가 치는 홈런과 안타 하나하나는 일본인에게 차별받고 멸시당하는 재일 조선인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고 있으며 자랑스러운 우리 조선 동포들을 차별하는 비열한 일본인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시원한 복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던 시절 수많은 일본 관중 앞에서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며 그가 한 말이다.
지금은 이승엽 임창용 등에 열광하는 일본 팬들이지만 1970, 80년대 귀화하지 않은 그에게는 야유와 냉대로 일관했다.
3000안타를 불과 30여 개 남겨두고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롯데 마린스로 이적시킨 것도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한국인이 대기록을 세우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이후에도 85개의 안타를 더 치고 은퇴했다. 3000안타 달성 당시 전문가들이 10년 안에 깨기 힘들 것이라고 했던 그의 기록은 28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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