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경 씨 “원효대사의 헤드스핀 한번 상상해 보셨나요”

  • 입력 2008년 5월 29일 03시 00분


“선덕여왕은 다이애나 비, 화랑은 비보이, 무열왕은 카우치 포테이토, 원효대사는 서태지…. 오늘날까지도 명성이 자자한 신라의 슈퍼스타들이 오로지 국가에 충성만 하면서 인생을 다 바쳤을 것이라는 ‘탈레반’적인 학설은, 나에게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다.”(소설 ‘서라벌 사람들’ 중 작가의 말)

‘나의 아름다운 정원’ ‘달의 제전’ 등 장편소설을 잇달아 발표해 온 소설가 심윤경(35·사진) 씨가 새 연작 ‘서라벌 사람들’을 펴냈다. 신라 서라벌을 배경으로 이 소설이 펼쳐내는 신화적 상상력은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순다. ‘역사적 상상력’이란 화두는 이제 문학뿐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낯설지 않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 더 낯설기까지 하다.

소설은 5개의 연작으로 이뤄져 있다. 각 소설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연제부인(지증왕의 부인), 선덕여왕, 원효대사, 화랑 등 우리에게 친숙한 신라의 인물들을 새롭게 해석해 냈다. 화랑들의 무예 훈련에선 비보이의 현란함이 엿보이고 선덕여왕을 떠받드는 신라인들의 행동에서 팬덤 현상이 느껴진다. ‘정통 역사소설’도 아니지만 ‘팩션’이라 하기도 애매하다. 작가는 “외사(外史)의 시각으로 본 정사를 다루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교와 불교가 유입돼 토착종교와 충돌을 일으키던 변화의 시기를 조명해보고 싶었다”면서 “두 세계의 충돌이란 주제는 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양물이 한 자 다섯 치나 되는 지증왕, 칠 척 오 치나 되는 거구에 신과 교감하는 연제태후, 성대하고 엄숙하게 치러지는 교합례, 화랑들의 동성애, 흥법회에서 헤드스핀(물구나무 선 채 머리로 회전하는 것)하는 원효대사…. 작가는 다섯 편의 이야기를 통해 보편 종교의 관습과 규범에 얽매이기 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원시적 야생성과 의식의 자유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성(性)’에 닿아 있다.

이 작품은 성에 관한 묘사가 많아 지난해 계간 ‘실천문학’에 연재될 때 ‘선데이 서라벌’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작가는 “실제로 불교와 유교가 도래하기 이전까지 신라인들의 토착종교는 성을 숭배하는 것이었고 여러 사료를 봐도 지금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걸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사서 행간의 빈틈을 자유분방하게 채워 나간 솜씨를 보면 “역사소설을 쓰면서 오히려 더 자유로움을 느꼈다”는 작가의 고백이 쉽게 수긍이 간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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