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하나다? 매체따라 달라요

  • 입력 2008년 5월 29일 03시 00분


■ TV-연극-영화 넘나드는 연기자 급증

KBS 2TV 드라마 ‘대왕 세종’에 황희 정승으로 출연 중인 배우 김갑수(51) 씨. 시청자 게시판에는 ‘때론 냉철하면서도 때론 다정한 표정’ ‘매주 드라마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황희 정승의 눈빛 연기’ 등 소감이 잇달아 올라온다.

김 씨는 또 6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배우세상소극장에서 연극 ‘선우씨 어디 가세요’의 주연을 맡아 공연 중이다. 꼼짝없이 누워서 연기해야 하는 전신마비 환자 역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공연을 보고 나온 관객들은 “몸을 쓸 수 없는데도 폭발적인 연기를 보여준다”며 입을 모은다.

드라마와 연극 무대에서 김 씨의 연기에 대한 감상자의 평을 들여다보면 차이가 난다. TV 시청자의 소감이 ‘눈빛’이나 ‘얼굴 표정’ 같은 신체의 한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연극 관객들에게 인상적인 것은 전신의 움직임이다. 감상자의 평이 다르다는 것은 매체에 따라 배우들의 연기 방식도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 카메라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

연극 연출가가 되기 전 방송국 PD로도 활동했던 임영웅(72) 씨는 관객이 있고 없음을 중요한 차이로 꼽는다. “TV는 카메라를 상대로 연기하기 때문에 관객과의 교류가 없는 반면 연극은 항상 관객을 의식하면서 연기해야 한다. 물론 무대에서 기초를 잘 닦으면 기계인 카메라를 앞에 두고도 연기를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 ‘너무 연극적으로’ 연기한다고 해서 TV에 적당하지 않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다.”

김 씨가 처음에 TV 연기에 뛰어들었을 때도 그랬다. “PD들이 일상 생활하듯이 연기하라고 했는데 연극적인 대사와 동작이 나왔다. TV라는 매체에는 이런 연기가 적당하지 않아 처음에는 나도 많은 고민을 했다.”

‘밥 먹었니?’라는 간단한 대사 하나를 하더라도 차이가 난다. TV는 카메라가 얼굴을 생생하게 잡아주기 때문에 표정만으로도 대사 전달이 원활하지만 연극 무대는 관객이 배우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기 때문에 동작이 따라야 한다는 것, 말을 할 때도 TV에서보다 크고 깊은 목소리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연극적 연기를 보고 TV 쪽에서는 ‘오버한다’고 했는데, (대사와 동작을) ‘더 내보인다’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나 싶다”고 김 씨는 돌아본다.

연극과 영화를 오가는 배우 오달수(40) 씨는 자신이 출연했던 ‘올드보이’가 연극으로 옮겨진다면 캐릭터가 변할 것이라고 말한다. “스크린에서 눈빛만으로 상대를 무섭게 노려보는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연극에서는 몸이나 손발을 이용해서 위압적인 모습을 보이는 거죠. 영화는 스크린 사이즈가 정해져 있다는 걸 감안해서 움직임을 계산해야 하는 반면 연극의 경우는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요.”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는 움직임이 별로 없어 내성적으로 보였던 캐릭터가 연극에서는 활달하게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TV와 영화, 연극 연기를 오가는 박상원(49) 씨는 TV와 영화의 차이도 짚어낸다. 영화의 스크린이 TV의 브라운관보다 크기 때문에 “눈썹의 떨림마저도 연기로 동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 배우의 예술과 연출의 예술

연극은 결국 배우가 끌어가는 예술이다. 김태훈 세종대 영화예술과 교수는 “연극의 경우 배우가 연기와 발성뿐 아니라 조명 효과와 무대에서의 위치까지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와 방송의 경우 이른바 감독이나 PD가 촬영장에서 ‘무대장치’를 갖춰놓은 상황에서 배우가 연기를 한다. 더욱이 연극은 배우가 1시간 반 이상 극을 끌어가야 하지만 영화와 방송은 짧은 컷들을 찍어놓고 편집한다. 배우의 에너지와 집중력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영화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최민식 씨가 지난해 연극 ‘필로우맨’을 공연하고, 탤런트 이순재 씨가 30일 시작하는 연극 ‘라이프 인 더 씨어터’의 주연을 맡는 등 다른 매체에서 활동하다가도 연극무대에 서는 이유가 바로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실제로 영화나 방송에서는 확신할 수 없었던 연기력을 무대에서 확인한 경우도 있다. 심영 KM컬쳐 이사는 “탤런트 한채영 씨가 연극 ‘서툰 사람들’에 출연한 것을 보고 놀랐다. ‘이미지로 어필하는 배우’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연극무대에선 이미지가 아니라 연기력이 돋보였다”며 “연극을 본 뒤 영화 캐스팅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배우와 연출가, 이론가 모두 “연기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박상원 씨는 “화내는 연기를 할 때 몸을 떨 수도 있지만 미동도 없이 분노를 내보일 수 있듯, 저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며 “어떤 매체든 결국 연기는 창의력, 상상력, 표현력을 잘 버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중요한 것은 감정의 크기를 상황에 맞추어 정확하게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어떤 매체든 뛰어난 연기자에게 공통된 것은 이렇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연기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연출가 배우 이론가가 밝히는 연기의 차이점
분야연기 차이의 요인연기 차이의 내용
임영웅(연출가)관객▽TV드라마=카메라를 상대로 연기하기 때문 에 카메라가 붙잡지 않는 신체부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연극=관객을 의식하기 때문에 신체의 세부 적인 부분까지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달수(배우)화면의 크기▽연극=정해진 화면이 없기 때문에 신체 전 체를 동원해 적극적으로 연기할 수 있다. ▽영화=화면 크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움직임에 계획을 세워야 한다.
김태훈(연기학자)배우 연출가의 비중▽연극=배우가 조명과 무대장치까지 어떻게 이용할지 연구해야 한다. ▽영화, TV드라마=연출가가 계획적으로 세 팅한 환경에서 연기해야 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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