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46) 씨의 희곡 ‘일월’은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담은 작품이다.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짤막한 역사의 기록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졌다. 장 씨는 지난해 희곡집 ‘고르비 전당포’를 통해 독자들에게 이 희곡을 선보였다.
‘일월’이 무대에 오른다. 극단 실험극장과 젊은 연출가 김재엽(35) 씨가 의기투합했다.
난제는 희곡과 무대의 간극을 좁히는 것. 장 씨의 희곡은 공연을 전제했다기보다 레제드라마(연극성보다 문학성을 강조한 읽기 전용 희곡)에 가깝다. 원작의 긴 대사를 짧게 재구성했고 극의 재미를 돋우기 위해 부소가 눈이 멀거나 무릉도원의 환상을 보는 장면 등 원작 희곡에 없던 에피소드를 다양하게 넣었다.
극적인 스토리텔링보다 권력에 대한 성찰을 담은 대사에 기대어 연극이 진행된다. 그만큼 배우의 역할이 큰 작품이다. 배우들은 1인 다역을 맡아 다양한 얼굴을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고른 덕분에 극은 안정감 있다. “법가사상을 공부하라니까. 인문학은 끝났어. 법학이라니까”(진시황) 같은 현재를 연상케 하는 대사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의자 2개, 책상 2개, 역사적 사실의 이면을 상징하는 스크린만 놓인 무대는 간소하다.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와 화려한 의상에 집중하게 된다.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진시황의 폭압적인 리더십, 1인자가 되고 싶은 몽염의 한풀이 리더십, 부소의 어질지만 이상주의적인 리더십이 대비된다. 천하를 갖고 싶어 했던 진시황도, 좌절한 변방의 장군 몽염도, 폭력을 상징하는 남성성을 거부하면서 여성이 되고자 한 부소도 저마다 한계를 내보인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김동수플레이하우스에서 6월 5∼29일. 화∼목요일 오후 8시, 금요일 오후 4시 8시, 토요일 오후 4시·7시 반, 일요일 오후 3시(6월 6일은 오후 4시 7시 공연, 월요일은 쉼). 1만5000∼2만 원. 02-889-3561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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