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커, 그의 혀 끝에 세계 와인값이 요동친다”

  • 입력 2008년 5월 29일 07시 31분


‘와인 황제’ 로버트 파커(61)가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삼성카드, 신라호텔 초청으로 27일 한국을 방문한 파커는 2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기자회견을 시작으로 30일 ‘파커 와인 갈라 디너’ 행사를 갖는 등 4박5일 일정을 소화한다. 파커의 방한 소식에 와인 업계와 미디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파커는 세계 와인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파커 포인트’라 불리는 그가 매긴 점수에 따라 와인 값은 요동친다. 높은 점수를 받은 와인은 가격이 폭등하고, 반대로 낮은 점수를 받은 와인은 가격이 폭락한다. 도대체 파커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파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 아내의 지원과 격려가 파커를 만들다

1947년 7월23일 미국 볼티모어 북부 몬크턴에서 태어난 파커를 와인의 세계로 이끈 건 아내 팻 파커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파커는 부모가 와인을 마시지 않아 접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첫사랑이자 현재 아내인 팻을 만나기 위해 1967년 휴학을 하고 프랑스 알사스로 날아간 뒤 와인 사랑에 빠진다. 프랑스에서 콜라보다 싸다는 이유로 마시게 된 와인을 6주 간의 여행 동안 매일 함께 했고, 와인에 반한 파커는 미국으로 돌아와 대학교에서 테이스팅 그룹을 만들며 점점 와인에 빠지기 시작한다.

학생 신분으로 결혼한 파커는 팻이 고등학교 교사로 번 돈의 대부분을 와인을 사는데 썼다. 이 때문에 이들 부부는 핫도그와 마카로니로 식탁을 꾸릴 수 밖에 없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집에 벽돌과 널빤지로 셀러를 만든 파커는 와인 보관을 위해 실내를 차갑게 유지했고, 팻은 남편을 위해 스웨터를 껴입고 생활하는 등 불편을 감내했다.

변호사 생활을 그만두고 와인평론가로 전업한 것도 아내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커는 1993년 프랑스 정부의 ‘국가공로훈장 기사장’을 받는 자리에서 상을 아내에게 바쳤다.

○ 파커 포인트(PP)와 1982년 보르도 와인 평가

1978년 와인 격월간지 ‘와인 애드버킷(Wine Advocate)’을 발행하고 비평에 나선 파커는 와인에 100점 만점의 파커 포인트를 매기면서 눈길을 모은다. 미국 학교에서 점수를 주는 방식에서 따온 이 평가 시스템은 소비자가 쉽게 비교를 할 수 있는 점이 주효했다. 파커는 객관성을 유지하고, 와인생산자와 연계되지 않고 독립적인 자세를 유지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었다.

파커의 신뢰도를 결정적으로 높인 사건은 1982년 보르도 와인에 대한 평가다. 대다수의 평론가들이 안 좋은 빈티지라고 깎아 내렸지만 파커는 좋은 빈티지라고 극찬했고, 결국 좋은 와인임이 증명돼 명성을 얻는다.

이를 통해 그는 1999년 와인 평론가로는 최초로 프랑스 최고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 기사장’, 2004년 이탈리아 국가 공로훈장 ‘꼬멘다또레’ 등을 수상하며 와인에 있어 최고 권위자로 명실상부 인정받는다.

○ 협박은 있어도 타협은 없다

그만큼 전 세계에서 숭배와 질시를 함께 받은 사람은 없다. 뉴욕타임스가 ‘파커가 시음한 와인을 내뱉는 순간 와인상은 전율한다’고 표현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특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평가하는 그의 방식은 절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낮은 점수를 매긴 와인은 여지없이 판매가 추락하기 때문에, ‘타깃’이 된 와인생산업자들은 그를 지독하게 싫어했다. 1990년 파커가 ‘부르고뉴: 생산자, 아펠라시옹, 와인에 관한 종합가이드북’을 들고 홍보 일정을 돌 때 전화 자동 응답기를 통해 살해협박 메시지를 수차례 듣고, FBI에 신고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명예훼손으로 인한 고소도 수차례 당했다. 하지만 파커는 이런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 자상하고 사려 깊은 아버지

파커에게는 한국인 딸 마이아가 있다. 1987년 입양한 딸이다. 올해 21살로 미술을 공부하는 마이아는 생후 3개월 때 자신의 가족으로 맞아들인 소중한 딸. 마이아를 누구보다 아끼는 파커는 와인평론가답게 와인을 딸에게 선물했다. 딸의 출생년도인 1987년 빈티지로 페트뤼스, 샤또 오존, 샤또 무똥 로칠드를 각각 1케이스(12병)씩 딸 명의로 구입한 것.

최고급 명품 와인으로 꼽히는 이 세 와인은 1987년 빈티지 기준으로 수백 만원을 호가한다. 국내에선 구하기도 힘든 와인으로 프랑스 현지에서 최소 200만원은 넘는다는 게 와인업계의 설명. 최소 7000만∼8000만원 하는 파커의 선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격이 올라갈 것이고, 딸에게 더욱 소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

○ 파커가 선택한 와인 중의 와인

로버트 파커는 30일 신라호텔에서 갖는‘파커 와인 갈라디너’에 총 7종의 와인을 선보인다.

볼랭저 스페셜 뀌베 브뤼(넌빈티지), 볼랭저 그랑 아네(1999), 가야 스페르스(1998), 샤또 보까스텔 오마주 아 자끄 페랑(1998), 샤또 보까스텔 라 미숑 오브리옹(1989), 토브렉 럭닉(2004), 테일러스 빈티지 포트(2000)가 그 것.

와인 매장에서 파커 포인트를 본 사람들은 도대체 이 와인이 얼마짜리고, 국내에서 사서 마실 수 있는 와인인지가 무엇보다 궁금할 것이다.

일단 마실 수 있는지 여부부터 얘기하면 오마주 아 자끄 페랑(1998)과 라 미숑 오브리옹(1989)를 제외하고 5종의 와인은 구매 가능하다.

두 와인도 이번 갈라디너에 선보이는 빈티지가 아닌 다른 빈티지는 살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5가지는 사서 마실 수 있다는 말인데 문제는 가격일 터. 대중이 가장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와인은 볼랭저 스페셜 뀌베 브뤼(넌빈티지)로 12만6000원이다.

파커 포인트는 89점으로 파커가 선정한 100대 와인 중 샴페인 순위로는 1위. 숙성 기간이 이보다 긴 그랑 아네는 22만원. 파커 포인트는 없다.

볼랭저는 영국 왕실에서 최고급 인사가 방문할 때만 내놓는 특별한 샴페인이다.

빈티지 포트는 32만7000원으로 가격이 올라간다. 디저트 와인으로 주로 마시는 이 와인은 파커로부터 98점을 받았다.

럭닉은 41만7000원이다. 2001 빈티지부터 2004 빈티지까지 4년 연속 99점을 받았고, 이로 인해 토브렉 사는 창립한 지 15년이 채 안 돼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스페르스는 92만7000원으로 가격이 훌쩍 뛴다.

생산자인 안젤로 가야는 “이탈리아 와인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파커에게서 받았다. 파커 포인트는 94점.

오마주 아 자끄 페랑(1.5리터)과 라 미숑 오브리옹은 각각 154 만원과 500만원 대로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한다. 둘 다 파커 포인트 100점 만점을 받았다.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사진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관련기사]로버트 파커, “입양딸 마이아는 한국사람, ‘개성’있어야 최고의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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