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테러 지지하는 노소설가의 고뇌 그려

  • 입력 2008년 5월 31일 02시 52분


◇책이여, 안녕/오에 겐자부로 지음·서은혜 옮김/464쪽·1만2000원·청어람미디어

오에 겐자부로 ‘마지막 3부작’ 완결편

머리를 강타당해 사경을 헤매던 노(老) 소설가 고기토. 겨우 의식을 회복하자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오랜 세월 인연을 끊다시피 했던 고향 친구 시게루. 한데 미국 생활까지 정리하고 자신과 지내겠다고 한다. 옛 사람의 환영에 시달리던 고기토는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이지만…. 어느 날 술기운에 시게루는 테러리스트와 함께 거대 폭력에 맞서 싸운다는 엄청난 계획을 털어놓는다.

‘책이여, 안녕’은 일본 문단의 거장인 작가가 스스로 “마지막 장편 3부작”이라 부른 시리즈 소설의 마지막 권이다. 1994년 ‘만엔원년의 풋볼’로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그가 자신의 인생과 문학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국내에도 시리즈 1, 2권 ‘체인지링’(2006) ‘우울한 얼굴의 아이’(2007)가 소개됐다.

전작들에 이어 깊이 있는 인간의 실존적 고민이 담긴 소설은 신랄하다. 세상을 망가뜨리는 폭력과 불합리에 맞서려면 개인 단위의 저항도 불사하라. 1935년생인 작가의 글답지 않은 ‘젊고 싱싱한 목적지향성’은 섬뜩할 정도다. 물론 작가는 “자폭 테러는 반대한다. 소설가의 상상은 언제나 기괴한 일탈을 포함할 뿐”이라고 말했지만.

“절망적인 자폭 테러의 자초지종을 만들라고 나를 ‘부추기고’ 있던 것은, 늙은 소설가에게 들러붙어 있는, ‘이상한 구석’이 있는 녀석, 그것도 젊은 놈이라네.” “…휴머니스트로서의 삶을 배반하는 것이 아냐. 왜냐하면 그것은 다수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거꾸로 죽을 인간을 살리는 일이니까.”

소설은 ‘역시 오에 겐자부로’다. 유려한 전개, 정제된 문체로 마음을 무겁게 사로잡는 힘은 놀라울 정도다. T S 엘리엇부터 도스토옙스키, 사뮈엘 베케트를 넘나드는 저자의 필봉은 오케스트라 명지휘자를 떠올리게 한다. 시리즈 3편 모두 서은혜 전주대 교수가 번역을 맡은 것도 일관성을 더한다.

하지만 그의 전작처럼 마음은 물론 눈꺼풀도 무겁게 사로잡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각각 독립된 소설이라지만 1, 2편을 안 보면 쉽사리 이해도 가질 않는다. 웬만한 문학적 소양 없인 책장 넘기기도 힘들다. 하긴 대가들 작품치고 어디 녹록한 게 있던가. 도전해 보되, 절망은 말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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