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출신인 슬라보예 지제크를 가리켜 흔히 ‘가장 난해하면서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라고 부른다. 난해하면서 대중적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서 모순이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다.
그의 대중적 인기에 대해 영국의 영문학자 테리 이글턴은 “지제크는 철학자라기보다 하나의 현상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우선은 그가 사유하는 대상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다문화주의, 지구화, 이라크전쟁, 앨프리드 히치콕 등 그가 학문의 대상으로 다루는 주제에는 제한이 없다.
하지만 그의 글은 이런 대중적이라는 평가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 어렵다. 철학과 심리학, 사회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온갖 사례를 갖다 붙이는 특징은 그의 글을 더욱 어렵게 한다.
레닌을 주제로 한 이 책도 읽기가 무척 까다롭다. 하지만 그가 이 책에서 말하려는 의도만큼은 분명하다. 그는 레닌이 1917년 러시아 혁명기 때 했던 기획과 실천을 오늘날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독재로 귀결된 레닌의 유산을 되살리자는 뜻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레닌이 기획했으나 실행하지 못한 것, 사유했으나 실천하지 못한 것을 짚어보면서 오늘날의 문제에 레닌적 사고를 대입해 보자는 것이다. 지제크는 레닌이 지금 이 시대에 있다면 오늘날의 ‘일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월드와이드웹에 대해서 어떤 문제를 제기했을까 궁금해 한다. 그런 다음 그는 “월드와이드웹이 없으면 사회주의도 불가능하며 우리의 임무는 그것을 더 크게,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레닌의 혁명가로서의 기질, 인간적 면모에 대해서도 지제크는 배울 게 있다고 강조한다. 우선 레닌은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지 않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성을 가졌다. 또 특유의 단호함으로 옳다고 믿는 것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책에 실린 레닌의 글에서 이런 면은 잘 드러난다. “지금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 기다리고,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말하는 데에나 몰두하고, (소비에트의) 기관을 위해 싸우는 일, 대회를 위해 싸우는 일에만 만족하는 것은 혁명의 실패를 선고하는 것이다”라는 대목이다.
레닌은 또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들으며 감상에 젖기도 하는 감수성을 가졌다면서 지제크는 “오늘날 정치인들 가운데 이런 흔적을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고 묻는다.
이 책은 1,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지제크의 사유를 촉발한 레닌의 글 가운데 지제크 스스로 모은 글을 실었다. 1917년 2월 혁명이 일어난 직후부터 그해 10월 혁명이 성공한 직후까지 혁명을 위해 쓴 중요한 문건들이다. 2부는 레닌의 사유를 끌어들여 현대 사회를 분석한 지제크의 글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