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한국에서 불법 영어강사로 돈을 벌던 스물세 살짜리 미국 청년이 해시시를 몰래 들여온 혐의로 구속돼 3년 6개월형을 받았다. 당시 어느 신문 한구석에 짤막한 기사가 났을지 모를 사건. 이 청년은 석방 뒤 미국으로 추방됐고 그로부터 10여 년 뒤 이 청년이 한국 교도소 생활을 회고한 책이 미국에서 출간됐다.
컬린 토머스는 이 책에서 한국에 도착한 날부터 마약 밀수 혐의로 구속돼 서울구치소, 의정부교도소, 대전교도소를 거쳐 1997년 석방될 때까지 ‘한국 체험’을 상세히 회고한다.
그는 한국이 “내가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고 약하고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게 했고 삶의 고통과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게 했다고 말한다.
초반부 한국에 대한 많은 기억은 ‘비열하게’ 그를 괴롭힌 한국 검사, 가축몰이용 전기 막대로 그를 고문한 형사, 나이와 지위를 엄격하게 따지는 감옥 내 유교문화에 대한 짜증이다. 그는 ‘기껏 해시시 1kg 들여왔다고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하나’라고까지 생각한다. “대다수 외국인처럼 한국에서는 무엇이든 해도 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 그는 이 생각이 “위험하고 오만하고 바보 같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가 이 책에서 회고하는 건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힌 “대한민국을 향한 별난 사랑 노래”는 아니다. “한국의 교도소에서 수많은 빛과 미덕, 인간애, 품위, 심지어 평화”를 발견했다는 한국어판 서문과 달리 그의 회상 속에서 한국은 사실 그에게 절망만을 가르쳤다.
이 책은 그 밑바닥의 절망에서 헤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한 외국인의 이야기다. 그의 값비싼 수업은 그의 ‘교실’이 한국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교도소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셈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한국 교도소에서 한국적 깨달음을 얻어 한국을 사랑하게 된 외국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순간의 실수로 감금이라는 충격적 사실에 직면한 젊은이가 분노와 공포를 어떻게 겪어냈는지에 대한 생생한 체험담으로 읽혀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미덕은 오히려 울거나 조는 아이들을 교실에 넣고 엄마들이 창문을 통해 지켜보는 정신병원 같은 영어학원에 대한 단상, 한국에 적응하지 못한 채 모여 술을 마셔대는 외국인들의 실제 삶 등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솔직한 묘사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