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국인 눈에 비친 ‘한국의 속살’

  • 입력 2008년 5월 31일 02시 52분


◇한 미국인이 렌즈로 바라본 20년간의 한국 풍경/드레이튼 해밀튼 지음/232쪽·2만8000원·생각의나무

경이에 찬 눈빛으로 서커스를 바라보는 노인. 배달할 연탄을 집게로 리어카에 나르는 연탄장수…. 한 이방인의 흑백 사진첩에는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으면서도 이제는 보기 어려워진 우리 일상의 풍경들이 오밀조밀 담겨 있다.

저자는 1960년대 미8군 제2사단사령부의 군인으로, 1980년대 고려대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사진첩은 그가 교편을 잡았던 1983년부터 2002년까지의 세월을 담았다. 제목도 ‘한 미국인이 렌즈로 바라본 20년간의 한국 풍경’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한국이 있기 마련이다”라고 말한 그는 렌즈에 담은 한국의 모습을 ‘믿음’ ‘노동’ ‘정치지형도’ ‘사람들’이라는 4개의 항목으로 분류했다.

1960년대 한국을 처음 찾은 그는 이후 20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의 달라진 모습에서 큰 인상을 받았는지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담았다. 탄광촌에서 휴식을 취하는 광부, 퇴근 후 소주잔을 기울이는 샐러리맨, 조선소에서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 인부, 좁은 청계천 골목길을 비집고 나가는 자전거 배달원 등 노동 현장을 담아 “이 모든 사람이 현재의 한국을 구체적으로 이뤄낸 사람들이다”라고 소개한다.

이방인의 눈에는 다소 ‘열광적인’ 한국의 개신교가 퍽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시장 거리에서 어깨띠를 두르고 전도하는 목사, 치유의 은사를 얻기 위해 기도원에 나와 쓰러져 있는 병자의 모습과 그 옆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마이크를 잡고 무언가를 외치는 사람 등을 소개했다.

지한파 미국인으로서 겪은 심적 갈등도 드러난다. 한국 대학가의 반미선전에 대한 사진이 많다. 그는 외세에 배타적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다. “(반미감정을 접할 때면) 상당한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이방인이 우리를 어떻게 봤느냐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20년 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나도 모르게 찍힌 옛 사진을 건네받았을 때의 가벼운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찡한 그리움. 이 사진첩은 그런 것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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