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학)의 원형은 子(자)가 없는 윗부분만이다. 두 손으로 나무를 엮어 집을 만드는 것을 나타냈다. 후에 배우는 주체로서 子(자)가 의미요소로 더해졌다. 원래의 것은 메까치 ·(학)과 깨달을 覺(각)과 고할 곡(곡)에서 보듯 주로 발음요소가 된다. 學(학)은 가르치다의 뜻도 있어서 斅(효)나 敎(교)와 통한다. 배움과 가르침은 나뉘지 않는 한 가지 일의 두 측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斅(효)와 敎(교) 옆에 붙은 부수는 같은 것으로서 때리다의 의미이다. 당시의 교학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爲(위)는 굳이 구체적인 뜻의 동사가 필요 없는 상황에서 쓰는 일종의 대동사로서, 여러 의미로 대체될 수 있다. 여기서는 만들다 또는 다루다의 뜻이다. 箕(기)는 곡식 따위를 까불러서 잡것을 가려내는 키이다.
활을 잘 만들려면 나무나 대의 여러 성질을 잘 이해하고 또 능숙하고 적절히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키를 만드는 기초부터 착실히 터득해야 한다. 또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반드시 털옷 만드는 법을 배운다”고 하였다. 붙이고 때우고 하는 기초를 익히기 위해서이다.
뛰어난 기예 뒤에는 충실한 기초의 축적이 있다. 그런데 후인은 그 현상에만 주목하며, 서둘러 이룸으로써 전인을 능가하려고 한다. 그러나 기초에 충실하지 않고는 오래지 않아 한계에 부딪힌다. 기예뿐이랴, 학문이나 사업 그 어느 것도 같으리라. 유가의 경전 ‘禮記(예기)’에 보인다.
오수형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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