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렸던 유년의 기억 빌려 추악한 사회 단면 까발렸죠”

  • 입력 2008년 6월 5일 03시 03분


소설 ‘사십일포’ 국내 출간 中세계적 작가 모옌 e메일 인터뷰

모옌(莫言·53·사진)이 돌아왔다.

‘홍까오량 가족’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등으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중국 소설가 모옌의 ‘사십일포’(문학과 지성사)가 지난달 30일 국내 처음 출간됐다. 사십일포는 2003년 중국에서 발표돼 그의 21세기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작품.

모옌은 국내에서는 홍까오량 가족이 원작인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친근하며 지난해 9월 중국 문학평론가들이 뽑은 ‘노벨 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중국 작가’ 1위에 오른 소설가다. 2000년 노벨상을 받은 가오싱젠(高行健)은 당시 프랑스 국적이었다.

사십일포 출간을 앞두고 본보와 e메일 인터뷰에 응한 그는 “먼저 이번 참사(쓰촨 성 대지진) 때 한국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에 고마움을 표시한다”며 “항상 한국 문학과 독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해왔다. 이 책을 국내에 옮긴 소설가 박명애 씨가 인터뷰 번역을 도와줬다.

―지난해에 이어 한국에 여러 작품이 번역됐다.

“무척 기쁜 일이다. 다만 작품들의 두께가 만만치 않은데 너무 한꺼번에 출간되면 독자들이 깜짝 놀라 달아나지 않을까? 하하.”

―사십일포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내용이다. 직접 작품을 소개한다면….

“이 책은 어린이 시각에서 현실세계를 묘사한 작품이다. 동화적 색채가 농후하지만 사회의 추악한 면을 풍자를 통해 대담하게 ‘까발린’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 화자인 뤄샤오퉁은 고기를 무척 좋아한다. 이는 열 살 때 세워진 동네 도축장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됐다. 특히 돼지 잡는 광경은 인상 깊었다. 뤄샤오퉁은 나와 닮았다. 어린 시절 육식을 좋아하고, 환상을 즐겼으며,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다.”

―언젠가 ‘만두를 배불리 먹고 싶어 작가가 됐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중국 경제는 매우 곤궁했다. 배고픔과 분리된 유년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먹는 걸 주 소재로 다룬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인생에서 처음 배불리 먹은 기억이 열여덟 살 때다. 부역에 동원돼 만두 여덟 개를 먹었다. 뱃가죽이 늘어지도록 먹는 게 소원인 건 당연했다.”

―책에 북한식 보신탕을 먹는 장면이 나오더라.

“오래전 북한 냉면을 먹어본 적은 있다.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도 개고기를 즐겨 먹어 상상해봤을 뿐이다. 아, 남한 한정식은 정말 좋아한다. 한국 요리는 건강에도 무척 좋다.”

―소설마다 참 소재가 다양하다. 경험인가, 취재에 의한 것인가.

“대부분 개인적 상상에 바탕을 뒀다. 경험이나 취재에 의존하면 오히려 문학적인 형상화가 어렵다고 본다.”

―한국 문학에 정통하다고 들었다.

“그 정도는 아니고 관심 있게 지켜보는 수준이다. 1980년 ‘한국소설선’을 처음 접하고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과 전광용의 ‘나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뒤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손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신경숙의 ‘외딴 방’ 등을 읽었다. 한국 소설은 세대를 뛰어넘는 그들만의 독특함이 있다. 작가 자신에게 익숙한 소재를 자연스레 창작의 모태로 삼는 것 같다. 앞으로도 한국 작가들과 호흡을 같이하며 함께 배워 나가고 싶다.”

―요즘 근황과 향후 작품 계획을 들려 달라.

“최근 쓰촨 성 재해지역을 둘러봤다. 공교롭게 한국 대통령이 와 주민들을 위로하는 모습도 보았다. 며칠 전엔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와 베이징에서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현재 신작은 구상 단계다. 작품 구상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집필은 금방 하는 스타일이다. 내년쯤 좋은 작품으로 다시 인사드리겠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