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 씨가 ‘아르스노바’ 연주회를 앞두고 4일 종로구 세종로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새로운 예술(Ars Nova)’란 뜻을 지닌 아르스노바는 진 씨가 2006년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를 맡으면서 야심차게 시작한 현대음악 연주회시리즈. 진 씨는 “내가 쓴 곡에 대해선 프라우드가 없다. 하지만 이 아르스노바 프로그램만큼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한 것 같다”며 자신의 기획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번 아르스노바 연주회는 두 차례로 나누어 진행된다. 13일에는 관현악 연주회로 ‘이국의 색채’라는 부제가 붙어있으며 15일은 실내악 연주회인 ‘아메리카’다.
‘이국의 색채’는 말 그대로 다양한 색채를 지닌 현대음악작품들이 등장한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작품을 위시로 해 클로드 드뷔시, 벨라 바르톡 등 현대음악 대가들의 작품이 프로그램에 올라있다. 그 중 진은숙 자신이 쓴 피아노 협주곡이 눈길을 끈다.
1996년에 작곡돼 지금까지 7∼8회 정도 연주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초연이다. 진 씨의 협주곡으로는 바이올린협주곡이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진 씨는 이 피아노협주곡을 더 쳐준다. 내용면으로나 예술적인 면으로나 윗길이라는 얘기다. 다만 청중이 이해하기엔 꽤 어려운 곡이다. ‘듣는 이’가 이러한데 ‘치는 이’는 오죽할까. 실제로 악보를 받아 든 연주자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연주를 사양(포기!)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이 피아노협주곡은 그 흔한 부제도 없다. 진 씨에게 물으니 “너무 추상적인 작품이라 나도 몇 달은 고민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이번 연주회에서 이 난해한 곡을 선보일 피아니스트는 빌헴 라츄미아.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벌벌’ 떠는 이 곡을 라츄미아는 거의 암보로 쳐내는 완벽한 기량을 과시할 계획이라 하니 지켜볼 일이다.
‘이국의 색채’가 세계 현대음악의 온갖 색채를 담은 포트폴리오라면 ‘아메리카’는 지역적 테두리에 선을 그어 독특하면서도 다문화적인 미국만의 음악세계에 집중했다. ‘왜 하필 미국인가?’라는 질문에 진 씨는 “유럽의 전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클래식 문화를 성장시켜 왔다는 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음악적 환경이 많이 닮았다”고 대답을 대신했다.
진 씨와 서울시향의 ‘아르스노바’ 시리즈는 외국 유수의 현대음악 기획자들조차 감탄을 금치 못하는 창조적 기획이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경악’의 수준이다. 바야흐로 세계 음악계가 한국을 현대음악의 ‘새로운 성지’로 주목하는 시대가 되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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