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백성을 편하게 만드는 仁政이 가장 급하옵니다”

  • 입력 2008년 6월 7일 02시 57분


율곡의 책문 가운데 도적책(盜賊策)편 원문. 율곡은 조정을 향해 “온 나라가 염치를 숭상하는 풍속을 이뤄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도록 올바른 정치를 펴 달라”고 당부했다.
율곡의 책문 가운데 도적책(盜賊策)편 원문. 율곡은 조정을 향해 “온 나라가 염치를 숭상하는 풍속을 이뤄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도록 올바른 정치를 펴 달라”고 당부했다.
◇율곡문답/김태완 지음/584쪽·2만5000원·역사비평사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은 오늘날의 논술시험과 비슷한 형태였다.

정치 사회 현안과 관련해 왕이 제시하는 문제에 응시생들이 답하는 것이다. 왕이 내는 문제를 책문(策問)이라 불렀고, 답을 대책(對策)이라 했다.

이 책은 율곡 이이가 쓴 책문과 대책 17편을 수록했다. 율곡의 책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율곡이 과거에 17번 응시했을 리는 없으므로 책문의 형식으로 정치적 견해를 제시하거나 철학적 사유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율곡의 활동기인 16세기는 사회 전반에 걸쳐 갖가지 모순이 발생하던 시기였다. 기득권층과 신흥 신료집단의 권력 다툼, 왕권과 신권의 갈등으로 국가 기강이 무너졌다. 변방에선 여진족과 오랑캐가 활개를 쳤다. 내우외환의 상황에서도 오랜 문치(文治)에 젖어 허약해진 학자 관료들은 개혁에 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조선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낡은 집’이라고 했던 율곡은 자나 깨나 나라 걱정이었다. 율곡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 왕과 관료들에 대한 충고 등을 책문과 대책의 형태로 썼다.

‘문책(文策)’편에서 그는 “과거(科擧)의 글은 규격이 있어서 아무리 훌륭한 글이라도 규격에 맞지 않으면 내침을 당하므로 과거는 진정한 인재를 뽑기에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며 과거의 폐단을 지적한다.

‘문무책(文武策)’에서 그는 학문도, 국방도 튼튼하지 못한 조선의 현실을 비판한다. 율곡은 왕의 실천과 인도가 중요하다며 “도덕적으로 인륜의 표준이 되시고, 군대를 움직임은 하늘의 명령에 따라 하신다면 문무가 조화롭게 이뤄질 것”이라고 충고한다.

율곡은 단순히 교훈적인 문장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학식을 동원해 한 무제, 당 태종 등의 치적을 열거하거나 고사를 인용하고, 역사 속에서 벤치마킹할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도적책(盜賊策)’에선 정치가 소통하지 않는 현실이 도적을 만든다면서 이를 막을 방법을 제시한다.

“임금이 백성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으면 간악한 풍속이 끊어지고, 임금이 산업을 다스리는 도리를 잃으면 억센 도적이 많아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도적을 멈추게 하려면 백성을 편하게 하는 인정(仁政)보다 시급한 것이 없다.”

율곡은 ‘천도인사책(天道人事策)’에서 하늘과 사람 사이에 선과 악이 서로 교감하는 이치가 무엇인지를 따지고, ‘성책(誠策)’에선 “정성을 다하면 결국엔 효험을 거둔다”는 진리를 강조한다. ‘군정책(軍政策)’의 요지는 ‘훌륭한 지휘자 선발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고, ‘의약책(醫藥策)’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병이 드는데 윗사람이 백성을 교화하고, 관직을 바로잡으면 나라의 병은 다스려진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사회 현실에 대한 글만 있는 건 아니다. 17편 가운데 절반 정도는 하늘의 이치, 우주의 질서, 삶과 죽음, 사후 세계에 대한 궁금증 등 율곡의 생각이 담겨 있다.

책을 덮으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 떠오른다. 율곡이 살고 있다면 어떤 자문과 자답을 할까.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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