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llection’이란 제목 아래 7월 5일까지 서울 국제갤러리(02-733-8449)에서 열리는 설치미술가 조덕현 이화여대 교수의 개인전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의 이름이다. 겹겹의 세월이 느껴지는 빛바랜 사진을 그대로 옮겨 그린 초상화(사진)와 영상작업을 통해 두 여성의 경험과 기억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허구의 이야기로 재해석한 전시다.
서양식 이름을 가졌지만 둘 다 한국 여성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서 손 모델로 활동하다 영국인 귀족과 결혼한 로더미어 자작부인의 한국이름은 이정선(58) 씨. 경성방송국 설립자와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 최초 여성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걸어온 노라 노 씨의 본명은 노명자(80) 씨. 이국에 살면서 한국과 전통을 그리워한 여성과 이 땅에 살면서 새로움과 바깥을 열망했던 여성의 삶은 그 자체로 장편소설감. 그러나 조 교수는 비슷한 시대를 거쳐 온 여성들의 인간적 측면에 대한 조명일 뿐 비범한 개인의 전기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한다.
두 여성의 초상화가 마주 보는 로비를 지나 들어선 1층 전시장은 노라 노 씨의 공간이다.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 초상화와 거울, 빈 액자들이 빽빽이 걸려 있다. 앨범에서 골라낸 사진을 참조한 초상화들은 각기 풍성한 사연을 담은 듯 보인다. 계단을 오르면 2층의 어두운 공간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1998년 남편이 사망했을 때 화장한 유해 중 일부를 전북 무주의 백련사에 묻은 로더미어 부인의 공간이다. 백련사를 상징하는 흰 연꽃이 담긴 거울설치작업과 두 스님이 덕유산에서 연꽃을 발굴하는 동영상은 하나의 고리로 이어져 사색을 유도한다. 흥미로운 점은 사진도 액자도 연꽃도 모두 쌍을 이룬다는 점. 하나는 실제 상황, 또 하나는 작가의 재해석을 의미한다.
그의 설치작업은 미술이란 형식을 통해 문학적 서사를 담아내는 작업에 가깝다. 그래서 숨은그림찾기처럼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아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은 관람객들의 몫이다.
“보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일 뿐, 작가가 제시한 방향으로만 풀어 가면 재미없죠.”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