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활. 난 그런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었다.(1회)
“연기생활 18년을 되돌아보면 뜬 적도, 슬럼프로 가라앉은 적도 없이 평탄했죠. 이번에 혜진 역을 맡게 됐어요. 시청률을 떠나 가슴이 먹먹한 연기를 다시 할 수 있을까요. 연기가 아니라 제가 혜진이 된 것 같아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났어요. 나 없으면 당신은 살 수 있을까 하고요. 난 없을 거 같아요. 당신 없으면.(1회)
“애들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아요. 남편은 돌아서면 남이라는 극중 대사도 있지만….”
―편했다. 나보다 나이 어려 보이는 남자가 날 아무렇게나 대하는 것이 편했다. 그러자 달콤한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유혹.(2회)
“어려서부터 연기를 해서 생활의 폭이 좁았어요. 유혹거리도 없었죠. 동사무소도 결혼 후 처음 가봤을 정도로 세상 물정에도 늦게 눈을 떴어요. 불륜요? 저뿐만 아니고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나는 아니야, 저럴 수 없어’ 단정은 못 짓겠죠. 물론 바람을 피우면 안 되겠지만….(웃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난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여자였다. 내가 다 망쳐버린 걸까. 그까짓 것. 모른 척할 수도 있었잖아. 세상 남자들의 반이 넘게 바람을 피우며 산다는데.(5회)
“결혼 초 ‘바람피우면 끝이야’ 남편에게 그랬죠. 10년 살고 애도 키우다 보니 행여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당장 끝낼 것 같지 않아요. 반대로 제가 바람을 피운다면? 대사 중에 ‘남자가 바람피운 건 한강에 배 지나가는 자리고 여잔 남산에 광고탑 세우는 거야’라는 말이 있어요. 혜진이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남편에게 먼저 말할 수는 없겠죠.”
―당신 인생 속에 차지하고 있던 내 자릴 버렸다고 했죠? 그게 뭐 여자란 뜻이겠죠. 아내면서 애들 엄마면서 또 성적 대상이기도 한 여자.(6회)
“집에 가면 전쟁터예요. 남자 애 둘을 키우다 보니 평상시에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후줄근하게 있어요. 밖에 대충 하고 나가도 남들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아요. 하지만 여배우로서 여자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내 몸 안에서 뭔가 스멀거리며 일어나고 있다. 간지러운 느낌. 비릿한 생선 냄새가 배어 있는 바닷물처럼 역겨우면서도 친밀한 냄새가 코끝에 느껴진다. 잊어버렸던, 잊고 살았던 삶에 대한 그리움.(9회)
“잊고 살았던 삶이라, 그런 건 없어요. 저는 욕심 많은 배우가 아니에요. 한번 욕심을 품으면 끝이 없죠. 이 정도만 행복하면 좋겠어요. 40대가 되면 시트콤에서 한번 웃겨보고 싶네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