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도 건축도 자유가 화두… 끊임없이 변해야 산 공간”

  • 입력 2008년 6월 11일 03시 01분


유걸 아이아크 대표. 신원건 기자
유걸 아이아크 대표. 신원건 기자
유걸 씨의 건축은 제약과 구속을 거부한다. 교실 간 단절을 없앤 서울 밀알학교의 열린 공간 아트리움은 사용자에게 편안함과 자유를 부여한다. 사진 제공 아이아크
유걸 씨의 건축은 제약과 구속을 거부한다. 교실 간 단절을 없앤 서울 밀알학교의 열린 공간 아트리움은 사용자에게 편안함과 자유를 부여한다. 사진 제공 아이아크
‘서울시 신청사’ - 강남구 ‘밀알학교’ 설계 유걸 아이아크 대표

“제 디자인보다 제 나이에 관심이 쏠리더군요. 한국 사회가 고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나이에 제약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데, 굉장히 이상하게 봐서 놀랐어요.”

건축가 유걸(68) 아이아크 대표는 올해 ‘고령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신청사 설계공모에 참가해 당선된 인물’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유 대표는 그런 시선이 새삼스럽다. 삶과 건축 모두에서 ‘자유’를 추구해 온 유 대표의 건축은 늘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건축전문지 ‘공간’은 최근 발간하기 시작한 건축가 작품집 ‘플러스 아키텍트’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 유 대표를 내세웠다. 이 책에서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유걸의 특별함은 전체 작업의 흐름에서 불러일으키는 변화와 어긋남에 있다”고 평했다.

배 교수의 말처럼 유 대표는 인생과 건축에서 항상성(恒常性)을 거부해 왔다. 그는 ‘변하지 않는 불후의 명작’을 부정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존재를 높이 평가한다.

“요즘 세계 건축계의 화두인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은 ‘튼튼함’을 뜻하는 게 아니에요. 용도의 지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건물이 멀쩡해도 용도가 폐기되면 수명이 끝나니까요. 수요가 바뀜에 따라 다양한 목적으로 변용할 수 있는 공간, 즉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지속가능 건축의 요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건축물 가운데 애착을 갖고 있는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도 공간의 유연성이 풍부한 건축물이다. 자폐 등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 시설이지만 일반에 개방된 2층 홀은 예배당, 음악당, 예식장 등으로 용도가 바뀐다. 1층과 2층을 묶는 아트리움(atrium·안뜰)은 건물 전체의 경계를 허무는 열린 공간이다.

“제 설계에서는 여럿이 함께 쓰는 공간이 가장 중요해요. 용도를 미리 정하지 않아도 훌륭하게 사용되죠. 건축물의 수명을 늘리는 공간이 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유 대표는 한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획일적인 주거 시스템을 걱정한다.

“바쁜 일상 때문에 호텔에서처럼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호텔은 모든 게 고정된 공간이죠. 좋아하는 색으로 벽을 칠할 수도, 맘에 안 드는 가구를 치울 수도 없어요. 사용자가 자신에게 맞게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을 포기한 듯해 정말 끔찍해요.”

유 대표는 서울시청 신청사 설계안에도 변화의 의지를 강하게 담았다. 옛 청사를 정문으로 활용하고 바로 뒤 성큰 가든(sunken garden·햇볕이 드는 지하 공간) 위를 지나 신청사로 들어가게 배치한 것.

“전통 한국 건축에서 메인 공간으로 접근하는 방식이죠. 오래된 건축물이 의미를 가지려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실용적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흔적을 살리는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끌어내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봐요.”

자기 의견을 언제나 직설적으로 풀어놓는 유 대표는 날선 비판도 듣는다. 하지만 그는 “어떤 디자인이든 좋아하는 사람 반, 싫어하는 사람 반이기 마련”이라며 개의치 않는다.

“취중진담(醉中眞談)이란 말이 있죠? 저는 젊었을 때 ‘늘 취한 사람처럼 말하자’고 결심했어요. 한참 그렇게 살았더니 돌려서 말할 필요가 없어져 편해졌죠. 제약 없는 공간을 추구하듯 삶에도 제약을 두기 싫었어요. 며칠 전 어떤 학생이 자유롭게 사는 비결을 묻더군요. 별거 없어요. 성미에 안 맞는 일은 하지 않는 것.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못해도 걱정보다 즐거움이 많죠. 아내와 아이들이 지지해 준 덕분이지만. 허허.”

:건축가 유걸:

△서울대 건축공학과 졸업 △미국 R.N.L 건축설계사무소 프로젝트 디자이너 △1996년 김수근 문화상 △1998년 한국건축가협회상 △1998∼2000년 미국건축가협회상 △2002∼2005년 경희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현재 아이아크 대표 △설계 작품: 서울 밀알학교, 대전 배재대 국제교류관, 경기 밀레니엄 커뮤니티센터, 서울시청 신청사 등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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