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꿈의 발레’ 숨이 멎는다

  • 입력 2008년 6월 12일 03시 04분


내달 한국 무대 서는 ABT

무용칼럼니스트 정혜정 씨의 뉴욕공연 리뷰

《최근 미국 뉴욕 예술계의 핫이슈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공연이다. 7월 12일까지 뉴욕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ABT의 시즌 공연은 매회 3919개의 좌석이 가득 찬다. 뉴욕에 머물고 있는 무용칼럼니스트 정혜정 씨가 최근 ABT의 갈라 공연과 ‘돈키호테’를 보고 리뷰를 보내왔다. 이 공연은 12년 만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 무대를 펼치는 ABT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갈라 공연은 7월 31일(2만∼15만 원), ‘돈키호테’는 8월 1∼3일(4만∼20만 원). 02-399-1114 》

ABT의 공연을 보려면 줄선 관객들 때문에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 입장하는 데 수십 분이 걸린다. 그만큼 기대를 갖고 보게 된 ABT의 공연은 황홀한 체험이었다.

○ 한눈팔 틈을 허락하지 않는 ‘돈키호테’

9, 10일 열린 ‘돈키호테’ 공연은 ABT 최고의 레퍼토리. 세르반테스의 원작 속 기상천외한 몽상가 돈키호테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 선술집 딸 키트리와 가난한 이발사 바실리오의 좌충우돌 결혼 성공기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은 작품이다.

ABT는 시종 기교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움직임을 보였다. 1막의 사랑을 나누는 키트리와 바실리오의 열정적인 솔로와 듀엣, 투우사들의 박진감 넘치는 춤, 2막의 집시들의 열정적인 춤과 요정들의 톡톡 튀는 상큼한 춤 등은 관객이 한눈팔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3막은 절정이다. 키트리와 바실리오의 그랑 파드되(남녀 주역 무용수의 화려한 2인무)는 ‘돈키호테’의 하이라이트였다. 높은 점프와 빠른 회전 등 숨 막히도록 다이내믹한 바실리오의 춤, 빠른 템포에 고난도 테크닉이 끊임없이 연결되는 키트리의 춤에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특히 두 번의 푸에테(연속회전), 세 번의 회전에 이어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다양한 동작을 섞어서 이어가면서 32회의 푸에테를 흔들림 없이 구사하는 고도의 테크닉이 관객을 흥분으로 몰아넣었다.

조역 무용수들의 춤에도 비중을 주어 작품의 탄력을 더했다. 현란한 춤사위 못지않은, 조연들의 과장되고 익살스러운 마임도 이 작품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였다.

○ 클래식과 모던이 만난 갈라 공연

ABT의 주역 무용수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7일 갈라 공연도 화려했다. 안무를 맡은 트와일라 타프 씨는 정통 발레에 현대 스타일을 가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가위손’ ‘배트맨’ 등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대니 엘프먼 씨와 호흡을 맞춰 일찌감치 관심을 모았다.

초연작인 ‘래빗 앤드 로그’는 다채로운 음악을 배경으로, 래빗과 로그라는 두 캐릭터를 대비해서 묘사한다. 반짝이는 검은 수영복을 입은 여성 무용수들과 검은 유니타드를 입은 남성무용수들의 춤은 유쾌한 사교댄스를 연상시켰다. 배우 찰리 채플린처럼 우스꽝스럽게 걷는 움직임, 코믹하게 어깨를 흔들어대는 일상적인 움직임과 발레 동작을 배합해 웃음을 끌어냈다.

래빗의 춤은 환하고 우아했다. 흰 드레스 차림의 여성 무용수들과 흰 바지, 흰 셔츠를 입은 남성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고상했다. 대조적인 캐릭터를 미국식 유머로 풀어가고 있는 이 작품은 한 편의 뮤지컬을 연상시켰다.

또 다른 작품 ‘에튜드’가 이어졌다. 초보자에서 성숙한 무용수로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면서 기본기 연습부터 다양한 스타일의 리허설 과정을 그린 작품이었다. 어린이 발레리나 5명이 무대 중앙에서 기본 포지션을 취하는 장면이 이내 검은 튀튀에 흰 타이츠를 신은 무용수들의 연습 장면으로 전환됐다. 무대 뒷막에 조명이 들어오자 무용수들이 실루엣으로 드러나 환상적인 느낌이 부각됐다. 초반엔 어둡고 서정적인 느낌이었다가 빠른 템포로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다양한 테크닉과 조화를 이뤘다. 주역 발레리나와 발레리노 두 명이 4명의 발레리나와 함께 성공적으로 푸에테를 마치는 장면은 황홀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오래도록 힘찬 박수 세례를 보냈다. 이 멋진 ABT 발레의 매력에 젖은 한여름 밤을 보낼 기회가 한국 관객에게도 곧 온다니 무용 팬으로서 기쁘기 그지없다.

정혜정 무용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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