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정조 언제 ‘개혁 군주’이미지 벗을까

  • 입력 2008년 6월 12일 03시 04분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혁명가 체 게바라의 일대기를 다룬 ‘체’는 많은 화제를 모았다. 4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중 흥미를 끈 것은 게바라가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혁명 진영에서 힘을 잃는 모습이었다. 쿠바에서는 이방인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는 주문을 받고, 볼리비아에서는 용병으로 취급당한 그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이미지와 크게 달랐다. 이처럼 한 인물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볼수록 우리는 그의 참모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최근 뮤지컬과 드라마에서 애민 정신이 투철한 개혁군주로 주목받은 조선의 22대 왕 정조는 어떨까.

올해 상반기 MBC에서 대하드라마 ‘이산’이 방영되고 있고, 창작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도 재공연이 열렸다. 흥미로운 점은 연출가와 작가가 다른 데도 정조가 유사한 캐릭터라는 점이다. 국가와 백성을 위해 헌신적으로 개혁을 추진했으나 우매한 노론 세력에 방해받는 철인 군주가 그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정조의 다른 모습도 증언한다. 대표적인 것이 문체반정(1792)이다. 연암 박지원이 ‘허생전’ 등 풍자 소설을 선보였을 때 정조는 이를 비판했다. 정조는 “글은 옛 시대의 순정한 문체를 따라야 한다”며 박지원을 비롯한 신진 지식인들을 탄압했다. 이런 이유로 정조가 개혁을 추진한 목적은 노론을 누르기 위한 왕권 강화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화계에서 정조를 개혁 군주로 본격 묘사한 작품은 1993년 이인화 씨의 소설 ‘영원한 제국’부터였다.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후 15년이 지났지만 문화계에서 정조를 바라보는 관점은 변한 게 거의 없다.

작품은 그것을 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다양할수록 풍성한 의미를 낳는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조를 ‘철인 개혁군주’의 이미지에서 해방시킨 작품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묵인하고 동조했던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 대한 애증, 과거 답안지를 소설체로 지은 선비 이옥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강요하는 것 등 이런 정조의 면모에도 초점을 맞춘 작품을 보고 싶다. 정조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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