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출근하면 세러피스트에게 달콤하고 나른한 열대 꽃 향 오일로 마사지를 받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그녀는 ‘결혼이라는 벤처에서 성공한 투자자’다. 쇼팽을 ‘초핀’이라고 읽고 독한 여드름 자국이 선명하던 그 남자 대신 지금의 남편을 택해 안락한 삶을 누린다. 그런 그녀에게 잊혀진 ‘초핀’을 떠올리는 ‘유에프오’ 같은 존재가 나타나니, 바로 아들의 가난한 연인.(‘내 아들의 연인’)
오늘의 작가상(2002년), 이상문학상(2006년)을 수상한 소설가 정미경(48) 씨가 새 단편집 ‘내 아들의 연인’을 펴냈다. ‘너를 사랑해’ ‘내 아들의 연인’ 등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조각가, 영화감독, 주부 등 다양한 군상이 등장하지만 어떤 주제든 주인공의 삶에 깊이 파고들어 보편적인 메시지를 끄집어내는 솜씨가 돋보인다.
‘너를 사랑해’는 여자 친구를 자신이 모시는 거부에게 소개해 주는 자산관리인과 못 이기는 척 남자 친구의 부탁에 따르는 시간강사 이야기다. 두 사람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은 끊임없지만 돈 앞에선 철저하게 ‘실리적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
‘바람결에’는 불임 치료를 받는 교사의 일상을 그려낸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애인과 헤어지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지만 이토록 집요하게 아이를 원하는 것이 ‘사랑’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꽃 이파리처럼 흔들리는 배아를 보며 가냘픈 희망을 가져보지만 그녀는 또 한 번의 인공수정에서 실패한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맛깔 나고 세련된 심리묘사 덕에 술술 잘 읽히고 무척 재밌다. 그런데도 서글픈 여운을 남기는 것은 작가가 말한 것처럼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 쪼잔한 존재들의 슬픔’ 때문일 것이다.
‘나와 거리가 먼, 뉴스 속의 이야기는 쇼킹할수록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버라이어티쇼보다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들이 이 대도시를 거대한 공연장 삼아 쉴 틈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처럼 곳곳에서 보이는 사회상에 대한 간명한 지적들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200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밤이여 나뉘어라’도 수록돼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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