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1902∼1993)는 노벨 문학상 수상 독일 작가 토마스 만(1875∼1955)과 교유한 독일의 신문기자이자 작가다. 이 책이 독일에서 출간된 때가 1992년이니 세상을 떠나기 전 아흔 살에 남긴 노작인 셈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1930년대 미국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1902∼1974) 아들 유괴범 재판을 보며 토마스 만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토마스 만은 “재판을 통해 세계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에게 말했고 저자는 60여 년이 지난 뒤 그 아이디어를 실현했다.
기원전 339년 소크라테스 재판, 1894년 드레퓌스 사건 재판, 1917년 여성 스파이 마타하리 재판, 1924년 히틀러 재판, 1931년 알 카포네의 살인 사건 재판, 1935년 린드버그 아들 유괴 사건 재판, 1961년 나치 전범 아이히만 재판….
세기의 재판 22건을 모았다. 각각 재판 과정을 꼼꼼히 재구성한 글을 읽다 보면 대충 들어 알던 것과 다른 면모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사형 선고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그의 멋진 변론을 음미할 수 있다. 그는 “죽음이 모든 의식을 없애버린다면 영원이란 단 하룻밤과 같은 것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다른 모두를 만날 수 있는 어떤 곳을 향한 여행이라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 이 세계를 지배하는 법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그곳 세계를 지배하는 법관을 만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나를 차라리 몇 번이고 죽게 하라.”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기 전 “악법도 법”이란 말을 한 적이 없고 이 책에도 그런 사실이나 정황이 없다. 출판사 측은 사실 여부를 떠나 법과 관련해 독자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일 제목을 붙였다고 말했다. 원제는 ‘세계를 움직인 재판’.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