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비보이들의 ‘영원한 큰형’으로 통하는 MC고(본명 우정훈·29).
1일 경기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08 국제비보이대회’에서 그는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랐다. 비보이가 아닌 ‘MC 우정훈’이었다. 몸동작 하나하나에 비트박스 추임새를 넣으며 후배들을 격려하던 우 씨는 우스갯소리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나가시면서 화장실에 침 뱉지 마세요. 휠체어 바퀴에 침이 묻으면 손을 두 번 씻어야 돼요.”
화장실에 침을 뱉는 게 왜 나쁜지 우 씨도 1년 반 전에는 알지 못했다.
2007년 1월 14일 우 씨는 중환자실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가슴은 으스러지듯 아팠지만 다리엔 아무 감각이 없었다. 부산 공연을 마치고 상경하다 차가 전복되면서 하반신이 마비됐다. 당시 그는 결혼한 지 6개월 된 새신랑이었다.
한국의 첫 비보이 팀 ‘NY크루’의 창립 멤버이자 각종 세계대회를 휩쓸며 힙합댄서로 명성을 날리던 우 씨는 ‘다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갈비뼈가 부서져 폐가 찢어지고 척추가 어긋나 최소 1년은 치료해야 한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 씨는 8개월 만에 퇴원했다.
그가 찾은 새 길은 ‘비보이 배틀’ 전문 MC.
일반 사회자와 달리 우 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보이 댄서들의 치열한 경합을 생생히 중계했다. 화려한 율동 못지않게 유려한 입담을 인정받은 그는 비보이 공연 MC ‘섭외 0순위’로 꼽히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우 씨의 힘겨운 재활 과정에서 가장 큰 힘이 된 사람은 아내 김성희(30) 씨였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을 위해 김 씨는 강해지는 법을 배워야 했다.
김 씨는 “청천벽력 같은 사고 후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날이 없지만 남편 앞에서 내가 무너지면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같은 경험을 가진 가수 강원래, 김송 씨 부부도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우 씨와 절친했던 동료 댄서 김송 씨는 강 씨와 함께 자주 문병을 왔다.
강 씨는 하반신을 못 쓴다는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하는 가족을 대신해 우 씨에게 “이제 걸을 수 없으니 빨리 받아들이고 그 다음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우 씨는 서럽고 분했지만 자신을 일으켜 세운 건 강 씨의 냉정한 충고였다고 말했다.
“한순간에 불구가 된 사람은 다시 걷게 되리란 부질없는 희망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 받을 생각만 해요. 그러면 끝내 사회로 돌아올 수 없죠. 못 걷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새 길이 보였어요.”
우 씨는 1일 ‘2008 국제비보이대회’ 진행을 맡으며 국제무대 사회자로 데뷔했다.
“휠체어에 앉아 나비처럼 나는 후배들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힐 정도로 몸이 근질거려요. 그래도 무대에 오르면 심장은 그들과 함께 뛰어요.”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