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애틋한 효심 담긴 유적 사적으로”

  • 입력 2008년 6월 17일 16시 12분


17일 경기 화성시 안녕동 융건릉 권역내에 있는 정조의 첫 무덤 터 추정지역. 김재명 기자
17일 경기 화성시 안녕동 융건릉 권역내에 있는 정조의 첫 무덤 터 추정지역. 김재명 기자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애틋한 효심을 상징하는 정조의 첫 왕릉 시설 터(봉분 터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정자각 터 및 재실 터)가 발견되면서 이를 사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정자각 터와 재실 터는 대한주택공사가 아파트 단지 건립을 추진 중인 택지개발지구(태안3지구)에 속해 있어 보존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터가 발견된 곳은 경기 화성시의 사적 206호 융릉과 건릉 인근이다. 이곳엔 아버지 영조의 노여움을 사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융릉)와 아들 정조(건릉)가 함께 묻혀 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에 따르면 정조(1752~1800)가 처음 묻힌 곳은 현재의 건릉(융릉 서쪽)이 아니라 융릉 동쪽의 구릉이었다. 구릉은 지대가 낮은 데다 습하고 좁아 왕을 모실 자리가 아니라는 우려가 많았다. 정조는 왜 애초 무덤 터로 정비됐던 건릉을 마다하고 상서롭지 못한 구릉에 자신을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을까.

전문가들은 아버지 곁에 묻히되 아버지보다 낮은 자리에 있고 싶었던 정조의 효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설명한다. 구릉에 묻혔던 정조의 주검은 1821년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가 죽은 뒤 현재의 건릉으로 이장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사실은 잊혔고 첫 왕릉 터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융·건릉 사적 밖 동남쪽에서 재실 터가 발굴됐다. 이 터는 '정조건릉산릉도감의궤'에 재실의 평면 배치를 간략히 도식화한 '재실간가도(齋室間架圖)'와 정확히 일치했다.

재실 터에서 서북쪽으로 400여 m 떨어진 곳에서 정자각 터로 추정되는 건물 터와 무덤으로 가는 큰 길인 신도(神道)에 사용된 전돌들도 발견됐다. 이 터는 정조의 첫 무덤으로 추정되는 융릉 동쪽의 커다란 구덩이에서 남쪽으로 100여 m 떨어져 있다.

조선 왕릉은 주검이 묻힌 봉분과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정자각(봉분에서 100여m 떨어져 있음), 재실(정자각에서 남쪽으로 300~400m 떨어져 있음)로 구성된다. 정조 첫 왕릉 시설터가 완벽하게 남아 있는 셈이다. 정해득 한신대 외래교수(조선사)는 "정조가 융릉을 찾은 원행(園行) 길 터도 함께 있어 보존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이남규 한신대 교수(고고학)는 "이 터들은 정조 효심의 결정체인 만큼 사적으로 일괄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근 이곳을 실사한 한영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장(한국사)도 "재실 터만으로도 정조의 첫 왕릉 시설이 확인된 셈"이라며 "봉분 추정 터를 발굴해 이를 확증하고 사적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유적의 가치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정자각 터는 발굴이 중단돼 흙으로 덮였으며, 정자각 터와 재실 터가 주택공사의 택지개발지구에 속해버린 것.

경기문화연대 등 시민단체와 경기도는 아파트 단지가 융·건릉의 경관을 해칠 수 있다며 개발지구 전체(35만여 평)를 '효(孝) 테마역사문화권'으로 공원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주택공사는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태다.

주택공사는 최근 열린 정부 관계 기관 회의에서 개발지구 북쪽(15만 평)을 '효 테마공원'으로 하고, 개발지구 남쪽의 재실 터는 체육공원(3만 평)에 포함시켜 따로 보존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개발지구 북쪽에는 정조의 첫 왕릉 시설 관련 유적이 없다. 한영우 위원장은 "왕릉은 무덤, 정자각, 재실이 따로 독립된 '점' 단위 문화재가 아니다"며 "왕릉 관련 시설은 함께 보존될 때 가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봉분 추정 터를 발굴해 첫 왕릉 터로 확정되면 절차에 따라 사적 확대 지정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